필자가 쓴 글 중에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선택된 기억과 피해자의식: 양국의 기념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학위논문을 쓰고 육군사관학교에 복무하면서 연구를 멈추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연구였다. 휴가를 내서 독립기념관도 가고, 이전에 가보기도 했고 모아 놓은
우슈칸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자료를 모아서 쓴 논문이었다. 일단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퍼블리시를
하기 위해 학회지를 여기 저기 알아보게 되었다.
문제는 필자의 전공과 관련된 학회지에서 석사학위(박사과정 없이)만으로는 낼 자격이 있는 학회지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학회들이 학회지에 게재하는 조건으로 비용 지불을 요구하였다. 금전에 있어서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데 돈을 내는 것이 합당한가 생각했던 나에게는 전쟁기념관을 중심으로 다룬 연구였기에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는 국방부의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나오는 학회지를 찾았고 그곳에 일단 투고를 하였다.
돌아온 답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정식적인 심사도 거치지 못하고 이 논문은 돌아왔다. 이 논문은 자신들에게 맞지 않는 논문이라는 전화 통보를 통해 논문 투고는 취소되었다. 전쟁기념관에 관한 연구이니 공지에 올라간 연구성격에 어울리지 않느냐는 항변을 했지만, 본 학회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런 답변을 듣고 납득하기는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다른 학술지에 본 논문을 제출하였고 수정을 거쳐 게재되었다. 학교에 이러한 연구성과를 제출할 때 필자가 소속된 과가 아니라 사회과학처의 다른 과의 과장님들에게도 결재를 받아서 제출했어야 했는데, 그 때 군사사를 다루는 학과의 과장님이 본문을 다 읽어보시고 “군에 중요하고 필요한 연구를 했구만.”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립서비스이긴 하지만 뭔가 기분이 묘했다. 군사사 관련 학술지에서 이른바 ‘빠꾸’를 먹고 돌아온 논문인지라 이런 평은 묘할 수밖에 없었다.
논문을 쓰고 퍼블리시하는 과정에서 여러 일을 겪었지만, 여전히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기분은 참 알쏭달쏭해진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선배님들, 그리고 후배님들이 겪을 일이겠지만 논문을 쓰고 내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물론 그럼에도 난 여전히 쓰고 고치고 책을 보면 연구를 하겠지만, 한 연구가 그 연구의 결과물이 크건, 혹은 매우 소박하건 언제나
우여곡절을 거친다는 것을 보면 하나 하나에 대해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연구자가 논문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애정 어린 일이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대부분의 많은 논문들은 그러한 애정과 고통을 먹으며 자라난 논문들이다. 그런 논문들이 어떤 평가를 받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건은 뒤로 하더라도 쓴 본인들 각각에게는 다들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본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논문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다른 이들의 논문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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