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92 당신의 '기본값'은 모두의 '기본값'이 아니다 강의를 하면서 자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같은 자료를 두고, 같은 사례를 두고 토론을 시키면, 학생들의 결론이 갈리는 지점은 대체로 분석의 정교함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무엇을 '정상'으로 두고 무엇을 '일탈'로 볼 것인가. 무엇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로 두고, 무엇을 설명해야 할 현상으로 둘 것인가. 이 출발선의 차이가 이후의 모든 분석을 갈라놓는다. 사회과학에서는 이걸 영가설이니 기준범주니 하는 용어로 부르지만, 일상의 언어로 옮기면 그냥 '기본값'에 가깝다. 어떤 상태를 디폴트로 두고 그것에서 벗어난 것을 설명하려 드는가. 문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이 설정한 기본값을 '모두의 기본값'으로 착각하거나, 더 심한 경우 그것을 '인간 사회의 자연상태'로 착각한다는 데 있다.정치체제의 기.. 2026. 5. 8. 주변국 주권의 가격: 이란의 비용부과 전략과 동맹망 운영비용 잠식 1. 2026년 5월의 호르무즈호르무즈의 현재 상황은 단순한 봉쇄의 문제가 아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Operation Epic Fury'를 통해 이란의 핵·미사일 시설을 타격하고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한 이후, 이란은 정규전에서의 군사적 패배를 사실상 인정한 상태에서 전쟁의 무대를 재설정하기 시작했다. 3월 4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식화한 뒤 4월 13일부터는 미국이 이란 항구에 대한 역봉쇄를 가하면서, 전 세계 해상 원유 무역의 약 25%, LNG 무역의 약 20%를 통과시키던 해협은 사실상 마비되었다. 5월 4일 시작된 미국의 'Project Freedom' 작전은 첫날 미국 국적 선박 두 척을 호위하여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전쟁.. 2026. 5. 5. 마리로랑생 전시를 다녀와서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한참을 떠올려야 했다. 그곳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고, 르누아르가 있고, 세잔이 있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화가의 그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리 로랑생. 회색과 분홍, 그리고 옅은 파랑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화면은 주변의 인상주의자들과도 입체파의 거장들과도 다른 자기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처음에는 그저 "예쁜" 그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예쁘다'는 인상이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의 화면 속 여인들은 어딘가로 시선을 비껴나간 채, 보는 사람과 직접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인상이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발걸음을 옮긴 .. 2026. 5. 3. 미학 우선의 정치 비판: 두 유형에 관한 고찰 정치적 판단의 숨겨진 기준정치적 입장을 선택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 통상적인 대답은 정책의 정당성, 효과, 혹은 가치와의 합치 여부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다른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즉, 정치적 선택이 실제로는 정책의 내용보다 그 입장을 취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의해 상당 부분 추동되는 현상에 관한 것이다.이러한 현상을 본고에서는 “정치의 미학화”라 부르고자 한다. 여기서 미학화란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윤리적·실용적 고려에서 심미적 고려로 이동하는 사태를 가리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정책이 옳은가” 혹은 “이 정책이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이 “이 정책을 지지하는 내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으로 대체되는 현상이다.이 문제의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은 1930년.. 2025. 12. 21. Nowadays I got my driver's license and bought a new car that I'm now driving around. Since I started late, it feels somewhat hectic, but it's something I need to do, so it's just a bit of a hassle. I'll simply do my best to become a safe and comfortable driver. 2025. 10. 27. 길핀의 패권전이이론과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 로버트 길핀의 패권전이이론은 국제정치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결정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길핀은 패권국의 쇠퇴를 마치 자연법칙처럼 필연적인 과정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인간의 선택과 정책 혁신이 가져올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 실제로 역사는 창의적 리더십과 제도 혁신을 통해 쇠퇴를 늦추거나 역전시킨 사례들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영국이 '팍스 브리타니카'를 연장할 수 있었던 것이나, 냉전 종식 후 미국이 단극 체제를 30년 이상 유지한 것은 단순한 구조적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의 패권 전이는 결코 예정된 운명이 아니며, 정책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경로를 걸을 수 있다. 문제는 현재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길핀이 경고한 '최악의.. 2025. 7. 8. 이전 1 2 3 4 ··· 49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