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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언어가 에로틱하다는 사실은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아마 전세계 사람들은 디저트 '티라미수tiramisu'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디저트의 뜻에는 '나를 위로 올려주세요.', 다시 말해 '나를 흥분시켜주세요.'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옐레나 코스튜코비치, 김희정 역(2010),『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야기를 좋아할까?』(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p.467
매일의 평범한 일상과 가벼운 저녁 시간 일지라도, 식당은 언제나 에로틱한 분위기에 노출된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음식들은 점잖게 먹기가 힘들다. 식탁에 앉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다보면 손은 더러워지고 어느새 옷에는 소스가 튀어있다. 아마 이런면에서 더 탁월한 에로티시즘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스파게티를 포크로감아 올리는 일은 특히 붉은 소스에 흠뻑 담겨 있을 때는 체면을 차리기가 더 어렵다.
...공공장소의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에로틱한 의미가 함축된 메뉴들을 피하려고 한다. 이때 가장 훌륭한 선택은 리조토다. 실제로 밀라노의 많은 시민이 주문하는 메뉴가 바로 리조또다... 밀라노의 있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에는 다른 도시나 인근 북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앉아 있다. 중요한 사무나 거래를 위해 양복과 넥타이 차림으로 앉아 있는 이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숨기고 예의라는 강박관념에 갇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레스토랑에서 쌀요리를, 밀라노의 상징인 리조토를 자주 주문한다.
옐레나 코스튜코비치, 김희정 역(2010),『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야기를 좋아할까?』(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pp.469~470
리조토는 에로틱한 관점에서 별로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공적인 식사에서 정통성을 갖춘 메뉴가 되었다. 피자의 경우는 정반대다. 피자는 가족애를 드러내는 친밀함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서로 친하고 호감이 있는 사람들끼리 피자를 시켜먹는다. 서로 잘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피자를 함께 먹기가 꽤 부담스러울 것이다. 피자를 먹다보면 손으로 음식을 집어올리고, 길게 늘여진 모차렐라를 향해 혀를 날름거리는 등 우아하지 못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쩝쩝거리며 먹는 스파게티도 애정에 가까운 친밀감을 유도한다. 월트 디즈니가 만든 만화영화에서도 바로 그런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옐레나 코스튜코비치, 김희정 역(2010),『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야기를 좋아할까?』(서울:랜덤하우스코리아), p.285
예전에 모 분과 대화를 하다가 작업을 해야하는데 뭐 먹지하는 고민을 하는 얘기를 들었다. 국물있는 건 튀니 안되는데 하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자신은 ooo 순두부찌개를 양보할 수 없다는 굳은 결심(남자분이 아니라 여자분이라면 좀 센세이션일까?). 어쨌든 이 글을 읽다가 생각난 것은 그런 대화였다. 생각해보니 난 공적인 자리에서 레스토랑에 가면 리조토를 시키는 경향이 크고 사적인 데이트에서는 피자와 파스타(스파게티라면 페투치니, 라자냐도 종종..)를 자주 주문한다. 나도 어쩌면 음식의 함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무서워 진다.
음식과 에로티시즘은 사실 분리할 수 없다. 둘다 대단히 원초적 욕구라는 점과 신체가 직접적인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이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모든 미식가는 가장 극단적인 금욕주의자거나 가장 극렬한 쾌락주의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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