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일상단상

연필로 하는 필기를 싫어함으로서 더 나아가기-목적론적 가치의 남용과 오독에 대한 다짐.

Fulton 2012. 8. 29. 18:24
반응형

 나는 연필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한 연유에는 악필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된다. 나는 흘려 쓰는 악필인데, 이러한 악필로 연필을 쓰면 아무것도 분명하게 써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악필이라는 것이 더 도드라진 다. 실제로 만년필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이런 악필 때문이니, 연필은 거리가 참 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좋은 연필을 받을 때도 아낌 없이 뿌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연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부작용이 있다면 연필로 하는 데셍이나 이런 것과도 전혀 친해지지 않았다는 것. 뭐 근데 내가 그런 활동을 얼마나 하겠는가.


 혹자는 연필에 사각거리는 감각과 연필을 깎으며 느껴오는 그 감촉이 연필을 쓰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한 감각과 감촉이 굉장히 사람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조한다. 하지만, 그러한 감각과 감촉보다 악필인 나의 필체를 더 악화시키는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연필로 쓰는 필기를 극도로 혐오한다. 연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참 여러모로 지울 수 있는 필기를 포기하는 결과가 되지만, 내가 택한 것은 펜으로 하는 필기이다.


 사실 필기에 어떤 필기가 감성 돋고, 어떤 필기가 럭셔리하며, 어떤 필기가 허세가 쩐다는 것은 사실 웃긴 이야기이다. 필기는 결국 캘리그래피가 아닌 이상 수단이며, 그 수단에 목적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니까. 물론 개인적인 선호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선호가 집합적인 과정 없이 목적론적인 가치가 되는 것은 사실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연필로 하는 필기에, 목적론적인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세태가 그러한 목적론적 가치가 너무 쉽게 부여되는 것을 흔히 보기에 이런 글을 쓴다. 사물과 그 사물의 이용 및 소비에 개인의 주관적 선호가 부여되어 그것이 개인의 개성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목적론적인 가치가 부여되는 것은 많은 부분 위험하다 생각한다. 그것은 어떠한 합의도 함의도 갖추지 못한 채 표류하는 목적론적인 가치가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한 목적론적 가치는 수많은 회의들을 마주하면서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결국 모든 목적론적 가치 자체의 부정과 회의로 연계될 개연성이 존재한다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론적 가치가 함부로 어디에 부여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연필로 하는 필기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 하여, 연필이 가지는 기능적인 장점과 특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개성이 연필과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며,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연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를 목적론적 가치 부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 날에는 개인적 선호에 의한 부정을 목적론적인 가치의 부정으로 읽는 사람들도 많고, 또한 함부로 목적론적인 가치를 생각 없이 부여하는 일도 흔한 듯 하다. 적어도 일단은 나는 그렇지 않으련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주관성을 객관성과 혼동함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사회적인 마찰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떤 커피에 어떠한 목적론적 가치를 부여할 필요도, 어떤 제품을 옹호하고 비판한다고 그것이 어떤 목적론적 가치를 가진다고 무조건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