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마르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전시가 한 세기 전 예술계의 혁신으로 찬사받던 이 학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화제다. 바우하우스는 1919년 설립된 독일의 미술·디자인 학교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교육 이념과 실험적 작품으로 모더니즘 예술을 선도했다. 그러나 바우하우스는 1933년 나치의 압력으로 폐교되고 만다.
폐교 이후 바우하우스는 나치에 항거한 진보적 예술 운동으로 신화화되기 시작했다. 바우하우스 건축과 디자인은 자유와 진보의 상징으로 칭송받았고,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은 나치의 억압에 굴하지 않은 영웅으로 기려졌다. 전후 전 세계로 흩어진 바우하우스 구성원들의 활약상은 이 신화에 힘을 실어 주었다.
실제로 바우하우스 출신 예술가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모더니즘 예술 운동을 이끌었다.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시카고로 건너가 '리스 타워'를 비롯한 혁신적 건축물들을 선보였다. 구성원 중 하나였던 마르셀 브로이어는 미국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선구자로 명성을 떨쳤다. 라즐로 모홀리 나기는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새로운 시각예술 교육을 펼쳤고, 요제프 알베르스는 예일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색채 이론의 지평을 넓혔다. 이들의 활약은 바우하우스 정신이 나치즘의 억압을 이겨내고 온 세계에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우리가 믿어 온 바우하우스의 이미지가 역사의 편린임을 보여준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의 행보는 나치 치하에서 제각각이었다.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양심을 지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체제에 협력하거나 나치의 이념을 일정 부분 수용한 이들도 있었다. 바우하우스 구성원 중 일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전시는 바우하우스 출신 예술가들 중 나치에 희생된 인물과 나치에 협력하거나 심지어는 나치 이념을 옹호한 인물들이 있었음을 폭로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직물 예술가 오티 베르거와 건축가 프리츠 에르틀을 들 수 있다. 둘 다 바우하우스 출신이지만, 베르거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반면 에르틀은 그 수용소의 화장터를 설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막연히 믿어 온 바우하우스의 신화와는 사뭇 다른 민낯이다. 모더니즘의 혁신을 이뤄냈던 예술가들 역시 혹독한 현실 앞에선 나약한 개인에 불과했음을 알려준다. 나치의 광기 속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각기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우리는 흔히 예술을 정치와 분리된 순수한 영역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역사는 예술이 결코 사회와 동떨어질 수 없음을, 예술가 역시 시대의 격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준다. 바우하우스 예술가들이 나치 치하에서 보인 다양한 행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전환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예술과 예술가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신화화하기보다는, 그들 역시 시대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예술가 개인의 윤리 의식과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물론 나치즘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개개인의 선택을 함부로 재단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바우하우스 구성원들이 남긴 빛과 그림자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제적 정권 아래서도 예술가는 어떻게 예술적 가치를 지켜낼 것인지, 우리 사회는 또 예술의 자유와 독립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다.
결국 바우하우스 사례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단선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움을 일깨워 준다. 양자의 경계는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으며, 예술은 자의든 타의든 시대의 소용돌이와 결코 무관할 수 없다. 예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성취와 시대적 한계가 공존하는 바우하우스의 실상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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