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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 7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3- 한국은 왜 이런 합의를 해줘야 했는가?

조금 방향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THAAD 관련 논문을 쓰면서 THAAD 도입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한반도 THAAD 배치의 타당성에 대해 분석해봤다. 그러나 한 상황에 대해서는 타당성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주한미군이 THAAD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많은 부분 한미동맹의 확장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에 대한 안보 이익의 반대 대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자율성이 된다. 이러한 동맹 구도는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미일동맹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동북아에 깔아둔 동맹의 차륜구조는 냉전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동북아의 국제정치구조의 기본적인 구조가 된다. 즉 한국이나 일본이나 국가자율성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걸려 있게 되고 이는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2- '최종적'과 '불가역적'의 배경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역사문제 중 하나의 이슈이다. 그러나 이 이슈가 다른 이슈들과 동질성이 큰지, 혹은 특별한 경우인지에 대해 묻는다면 이질성이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정신대 문제에서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말로 촉발된 위안부 문제는 다른 과거사 문제와는 심각히 다른 성격 하나를 가진다.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와는 달리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이고 이러한 비인륜적인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에 애당초 포함되지 않았던 문제였다. 또한 이는 단순히 한국만이 피해자가 있는 국가가 아니었고, 태평양전쟁기의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에 피해자가 있는 글로벌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가 호명된 이상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1- 화해/반성/합의의 선택

이 물음은 사실 양국관계의 역사문제에서 중요한 지점이 무엇인가를 되짚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다. 역사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종결되어야 하는가? 화해(reconciliation)인가 아니라면 반성(contrition)인가, 그렇지 않다면 합의(consent)되어야 하는가? 엄밀히 말해 한국인의 다수는 일본의 ‘반성’을 바래왔다. 이는 사과(apology)와는 다른 개념으로 상대국의 전적인 사과와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반성은 수많은 국가관계에서의 역사문제에서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 독일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곤 하는데, 독일의 사례 역시 전적인 사과+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으로 지속된 사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례이며 독일-폴란드/독일-프랑스/..

결빙, 제한된 합의, 그리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한일외교장관회담 합의문에 대해

다음은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전문. 1. 일본측 표명사항 일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미국은 역사문제에서 입장을 바꿨는가?-Wendy Sherman의 연설에 대하여

페이스북에도 짧게나마 썼지만 Wendy Sherman 차관의 발언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래도 이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고 나름 밥을 먹고 사는 입장에서 코멘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쓴다. 필자는 언급되고 있는 여러 분석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는 지점이 있다. 사실 일단은 Sherman의 말이 개인적인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당히 미국 국무성 사이트에도 올라와 있는 차관의 공식적인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 넌센스이다. 다만 이러한 Sherman의 입장 표명이 미국의 입장이 과거에서 변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반대를 표한다. 사실 한국에서 문제가 된 문단은 다음..

아베 수상의 당혹에 대한 추측-오판의 대가

아베 수상이 기본적인 역사 인식은 처음 집권했을 때와 지금이 크게 변한 것은 없다. 한가지 확실하다면 아베 수상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그렇게 래디컬하게 우경화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측면은 지난 고이즈미 정부 이후 집권했을 때의 아베의 모습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고이즈미와 달리 국내정치적 동원이나 아시아를 자극하는 언사는 최소화 했다. 이는 그가 자민당의 간사장을 할 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고, 더더군다나 그가 수상에서 건강문제로 사임해서 물러난 뒤 나타났던 모습과는 간극이 심한 것은 분명했다. 어쨌든 수상으로서의 아베는 대단히 온건한 모습을 필력하려는 정치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즉 개인적 영역에서의 소신과 공적 영역에서의 조정이라는 측면은 간극이 있는 정치인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이..

탈냉전 이후 한일관계의 역사문제의 패턴화에 대한 서문

한일관계는 양국간의 우호관계와 지속적인 협력 증진에도 불구하고 불신과 반감이 존재하며, 양국관계의 역사문제에 의해 불신과 반감이 조장된다. 이는 양국관계의 변동과 기복으로 연결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나타난 본 논문은 기존의 선행연구들과 달리 한일관계에서의 역사문제의 패턴을 행위자라는 함수를 놓고 분석하여 현재의 한일 양국관계의 역사문제가 어떻게 진행되며 지속성을 갖는지에 대한 함의를 도출하려 한다.일반적으로 한일관계의 패턴은 선제적 움직임을 가지는 일본과 그에 대한 대응을 하는 한국에 의해 이뤄져왔다. 그리고 여기에서 단순히 정부영역뿐 아니라 관료와 미디어, 그리고 민간영역의 시민단체까지 행위자로서 개입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행위자들은 단순히 하나의 패턴으로만 기능하는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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