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전문. 1
1. 일본측 표명사항
일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구체적으로는, 한국정부가 전(前) 위안부 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일한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함.
3) 일본정부는 상기를 표명함과 함께, 상기 2)의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또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함.
2. 한국측 표명사항
한일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를 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한국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기까지의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정부가 상기 1.2)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실시하는 조치에 협력함.
2)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
3) 한국정부는 이번에 일본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
한일관계의 역사 문제를 정치적인 협상으로 최종적인 해결 가능한가? 사실 이 질문은 간단한 질문이 아니며, 오랜 기간 논쟁해온 주제이다. 다만 하나 하나 이슈에 관해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할 지 모른다는 전제가 한일관계에서 역사문제를 정치적인 차원에서 논의하게 된 동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러한 ‘최종적’ 또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쓰이게 된 합의문이 이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이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많은 선제적 논의가 필요하다. 일단 이는 국제법적으로 ‘전쟁 범죄’이며, 한일관계의 역사문제 중 큰 이슈이지만, 동시에 이 이슈가 다른 역사 문제 내외의 이슈들을 잡아먹은 감도 없지 않은 문제이다. 사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를 어찌 보면 피해왔었다. 다만 이번 합의문에 대한 설명을 요구한 분들이 있어서 이렇게 조악하지만 글을 쓰게 되었다.
법적책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다는 문제를 넘어서 엄밀히 말하면 일본은 고노담화와 그 후속 대책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기금’ 수준 이상의 내용은 없다. 단 전문에서 고노담화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 역시 최종적이고 불가역하다는 것을 ‘선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즉 일본이 아베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정부관계자 및 자민당, 보수인사들에 의해 제기된 고노담화에 대한 논란 자체를 이 합의문에 근거하자면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바라보자면 두 가지 입장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일본은 과거의 입장에서 변화 없이 일본 정부가 요구하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위안부 문제 종결을 합의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고노담화를 사실상 부정하며 흔들려했던 일본이 더 이상 이 문제를 가지고 논란을 일으키고 흔들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설명 모두 일리가 있다.
양 국은 결국 위안부 문제를 ‘결빙’하려 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은 이 문제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결빙’을 한국은 고노담화에서 후퇴하지 않는 의미의 ‘결빙’으로서 이 합의문을 도출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진전된 반성/화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결빙’은 제한된 합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최종적과 불가역적이라는 말은 의미 심장한 말이다. 다만 이 결빙은 완전한 결빙일까? 더 나아가 역사문제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final solution)으로 이 합의문은 기능할 수 있을까?
여기서 주목해봐야 할 부분은 한국 측의 표명사항이다. 한국측의 표명사항 전부는 일본의 행동을 전제로 행동할 것을 내걸고 있다. 심지어 ‘소녀상’에 대한 입장에서도 한국 측은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굉장히 모호한 레토릭을 통해서 일본 측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철거 및 이전이 아닌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을 참고해볼 때 고려해야 할 사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며 일본 정부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때 한국 측의 자율성은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둘째, 이른바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일본은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고, 배상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그 외의 사안은 과거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긴 하지만 굉장히 뚜렷하다. 다만 한국의 표명사항은 사실 매우 불분명한 감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의 표명사항은 대부분은 일본의 행위를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는 전문에서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협상결과에 대한 제약은 일본보다는 비교적으로 자유롭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협상 전문과는 별개로 봐야할 부분은 린드(Jennifer Lind)가 언급한 ‘backlash’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국내정치에 모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관념적인 역사문제가 양 국간의 협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지점은 어떠한 방식으로 협상을 하더라도 양 국가 모두 만족할 만한 해결점이 굉장히 불분명하거나 혹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양 국가의 국민들은 불만을 가질 개연이 적지 않으며 이는 어떻게든 정부에 대한 여론으로 표출될 것이다. 이러한 여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정책결정과정으로 생각해볼 때 이는 다시 양국관계에 투영될 가능성이 크다. 2
또 하나는 다른 위안부 관련 국가에 대한 문제이다. 위안부 문제의 피해국가는 한국뿐만 아니다. 이미 여태까지 사실 역사문제에서 일본과 대립각을 다른 국가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게 세웠던 타이완이 이 전문이 발표되자 협상을 요구하였다. 일본은 이런 국가들과의 협상을 앞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물론 앞에서 언급된 ‘backlash’로 연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가 국가 대 국가의 협상으로 나타났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역사적 문제에 대해 양국의 정부 협상으로 이뤄졌다는 점 역시 위안부 문제의 해결 주체가 국가로 한정되었다는 점도 생각해보고 지나가야 한다. 애당초 위안부 문제가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리인이 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존재할 수 있다.
위의 설명과는 별개로 개인적이지만 내 조악한 학위논문은 이번 협상을 넘어서도 살아 남았다. 애당초 양국관계의 상호간의 대립적인 입장이라면 ‘제한된 합의’, 상호간의 협력적인 입장이라면 ‘높은 수준의 화해/협력’, 엇갈린다면 상호간의 대치 및 정체가 나타날 것이라는 설명은 이번 합의문에서도 살아남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오래 살아남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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