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 점점 와해되어가면서 일본의 다나카 정부는 중일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었다. 1972년 중일 수교이후 중국정부는 기본적으로 일본과 우호적인 유지하려 하였다. 중일관계가 양 국의 지도부의 왕래로 개선되고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양 국은 서로의 접촉점이 증대되면서 점차 서로의 교류가 증대되었다. 이렇게 교류가 증대되면서 서로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상호간의 교류도 증가하였다. 여기에서 서로의 기억의 정치가 충돌이 발생하였다. 과거사에 대한 서로의 해석과 인식이 달랐기 때문에 결국 서로의 기억의 교류는 불일치를 가져왔다. 교과서 문제와 망언의 문제가 본격화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냉전 시기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충돌의 여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일관계가 개선되면서 이런 문제는 양국관계에 있어 방해요소로 본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