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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사실 본 전공이 사학이 아닌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루는 주제나 쓰는 글들에 많은 부분이 역사적 차원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받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필자는 외교사라는 학문적인 카테고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유는 외교사를 통해 이론을 도출해내는 과정 자체가 가능한지에 대한 회의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분석하는 도구가 되지만 그것을 가설화하고 이론화하는 추론화 작업에는 사실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참고자료로서의 역사이자 사례로서의 역사이지 그 역사 자체로는 정치학이라는 사회과학 학문에서 완성으로서 존속하기 어렵다고 본다.
Gaddis의 『냉전의 역사』는 그런 면에서 필자에게 흥미있던 저작이었다. 사실 모르는 팩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냉전 시대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어떠한 이니셔티브와 모티브를 가지고 유지되었으며 또한 어떻게 해체되었는지에 대한 그러한 함의를 보기 위해 이 책을 골랐고 이 책은 그러한 점에서 만점의 가까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책이었다. 단순히 외교사적 차원을 넘어 분명 이 책은 국제사, 혹은 냉전의 세계사를 분명히 논하고 있다고 부를 수 있는 책임에 틀림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미국에 편향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편향된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역사서로서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빚어내는 함의와 냉전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함의 분석에 대해서는 매우 정밀한 분석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한국에서 현대사를 교육함에 있어 냉전-데탕트-(신냉전)-탈냉전의 순서로 이뤄지는 바에 있어 데탕트의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하지만 Gaddis는 데탕트에 그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다만 데탕트로 이뤄지는 과정에서의 상황고 데탕트가 빚어낸 일의 그 의미를 두었다. 데탕트는 이미 냉전에 있어 상호 생존(공존이 아니다.)을 함에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는 것이 Gaddis의 시각이다. 즉 완벽한 상호 파괴를 가능하게 함으로서 상호간의 전쟁을 최소화하고, 이는 다시 상호생존으로 이어지는 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를 볼모로 강대국과 같은 진영에 있던 약소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두 강대국은 우연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 상호 확증이 필요로 했고 그것이 데탕트가 되었다는 것이 Gaddis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 데탕트의 결과물인 헬싱키 조약이 양 국가의 윤리 관념을 구속해 냉전체제의 균열을 주었다는 기술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도덕관념이 국제체제에서는 별개의 것이다라는 관념이 닉슨의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통해 무너지게 되었고, 소련은 프라하의 봄을 짓밟으면서 공산주의의 유토피아가 군사력을 사용해서 제어해야 할만큼 실패함을 잘 보여주었다. 이는 동시에 소련이 현재의 냉전 체제의 영토를 유지하고자 맺은 헬싱키 조약의 인권 사안에 대한 위반이었다. 이는 소련에게는 도덕적 파산을 안겨주었다. 미국도 소련도 모두 국제적 윤리관념의 도덕적 파산을 맞아야 했다는 Gaddis의 지적은 통렬한 지적이었다.
레이건에 대한 Gaddis의 서술도 사실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상호파괴에 대한 확증을 통해 유지된 냉전의 세력균형에 대해서 레이건은 상호파괴를 불가능하게 할 방어체계를 꿈꿨고 이는 곧 기존의 키신저를 비롯한 냉전체제를 유지한 전문가들이 바라보기에는 매우 위험하였고 또한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과격한 행동이었다. 이는 냉전의 ‘프로토콜’로서 규칙 위반이었다. 여기서 레이건은 하지만 핵무기 폐기의 꿈을 더 하였고 이는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매우 이색적이고 예외적인 논리 체계임에 분명했다. 레이건은 이미 냉전 체제 유지를 윤리적 차원에서 힘겨워하던 소련을 설득해 냈고 결국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냉전 체제를 해체해 버린다. 즉 환경으로서 약소국이 오히려 자신들의 약소함을 무기로 강대국을 흔들고, 윤리적 차원에서 양 극 모두 악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의 냉전체제의 약화와 더불어 레이건이라는 배우가 냉전체제를 유지해오던 가장 큰 규칙인 상호 파괴에 대한 확증을 깨버렸고, 이에 고르바초프가 소련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거대 구조물을 해체하면서 냉전은 무너졌다는 것이다.
역사가 국제정치학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과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가 가장 1차적 차원이자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다. 그러한 점에서 『냉전의 역사』는 이러한 점에 있어 매우 충실한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인 Gaddis는 국제정치이론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저술 내부에서 끊임없이 보였다. 그리고 서문에서도 자신의 저술이 국제정치이론 분야에는 공헌한 바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국제정치학이 무엇을 놓쳤는가에 대한 점검 포인트를 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즉 냉전이 붕괴되는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환경이 어떻게 실제 사건으로 이어져 왔는지에 대해서 지적해주고 있다. 사실 현대 국제정치학의 많은 종사자들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다시 고찰하고 있으며 이것이 국제정치학에 무슨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1
역사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다. 역사 자체가 어떠한 전망을 주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통찰은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망과 통찰을 착각하고는 하지만, 그 통찰만으로도 역사는 충분히 공리적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잘 짜여진 이론으로도, 그리고 양적 통계로도 제공하지 못하는 설명과 과정, 그리고 사례를 제시한다. 그리고 Gaddis의 『냉전의 역사』는 그러한 점에 있어서 매우 좋은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 이러한 이유에는 국제정치이론의 주류인 신현실주의가 양극체제의 지속성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며 동시에 국제정치학에서 이론 분야와 함께 공존한 외교사학자들 역시 냉전을 ‘긴 평화’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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