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사실 영국 음식은 그동안 말만 들어온 사람이다. 오히려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 같은 유명 쉐프들이 등장하면서, 영국의 음식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혼자 여행하면서 이런 세프들의 레스토랑에 예약해서 가기는 애매했다. 그래서 본인은 런던의 음식을 접해야 했던 곳은 일종의 펍, 패스트푸드, 그리고 가게에서 파는 샌드위치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영국의 음식에 악명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맛본 맥도날드에서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프렌치 프라이가 참 쓰게도 짜고 빅맥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맛이 겉도는 느낌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빅맥이라는 버거요리 자체가 맛없기가 사실 어려운 요리기 때문이다. 근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씹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뭐랄까, 맛없는 게 신기해서 먹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와 비슷한 맥락이 런던 음식에 익숙해져 갈 때 즈음 버거킹에 가서 일부러 와퍼를 시켰다. 와퍼의 고기는 사실 조리법 자체로서는 역시 맛이 없기 어려운 조리법이다. 한 입 씹어보고 느낀 것은, 고기 패티만 맛있다는 것이었다. 빵과 야채가 한없이 부조리하게 맛없는 데, 고기 패티만 먹을 만하다는 것은 뭔가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지 난 연유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현실로서 이럴 수 있다는 경이로웠다.
여행 내내 점심을 샌드위치로 때우면서 어떠한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도 익힌 샌드위치가 맛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날 것에 가까운 재료보다는 한번 익혀 맛을 살짝 희석 시킨 파니니 같은 샌드위치가 그래도 먹을 만 했다. 이것은 아무리 봐도 결국 재료 자체를 못쓴다는 이야기가 된다. 본래 재료 자체의 간만 잘 맞추고 재료를 잘 활용한다면 파니니보다는 그냥 일반 샌드위치가 야채나 빵의 신선도 때문에 더 먹을 만하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그 상식이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도시락으로 산 생선 초밥에는 와사비가 들어가 있지 않아 뭔가 많이 결여된 초밥을 씹어야 만 했다. 이런 음식들을 점심에 먹으면서 정말 런던 음식에 대하여 많이 회의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도 주위 분들에 말에 의하면 런던이 먹을 만 한 음식들이 많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인도 음식 식당이나 근동 계열의 음식 식당들, 그리고 중국집은 기대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까지였다. 펍이나 이런 곳의 음식은 영국 음식의 악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런던을 벗어나 케임브리지에 가서 먹은 음식은 더 지독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것인지 음식이 왜 이 모양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다른 유럽국가들 보다도 물이 좋지 못하고3, 다른 국가에 비해 궁정 문화가 약했고, 미식을 하는 것에 대해서 좋게 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한 때 세계 최고의 대영제국의 음식이 이런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었다.
영국인들이 시니컬한 이유 중 하나는 음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음식이 맛이 없다 보면 분명 인간적으로 스트레스가 누적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이라는 국가는 참 여행하기에는 좋은 국가일 수 있다. 하지만 살기에는 굉장히 부적합한데, 그 이유를 세 가지를 들라하면 하나는 물가요, 하나는 날씨요, 하나는 음식이다. 이 세 가지는 매우 복합적으로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 맛나는 전라도 음식에 길들여진 내가 이러한 런던의 음식에 익숙해 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내 각오 중 하나는 분명 이곳 음식을 견뎌야 한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 다짐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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