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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정치와 통치의 혼동 문제에 대하여: 좋은 통치는 좋은 정치인가?

Fulton 2024. 6. 2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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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치사상이나 정치이론 분야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정치'와 '통치'를 혼동하는 인식의 틀에 대해 우리 모두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패 스캔들, 이념 갈등, 정책 실패 등 정치권의 구조적 병폐가 도마에 오르곤 하죠. 하지만 이런 비판의 상당수는 정치와 통치를 혼동하는 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서양 정치학에서 정치(politics)란 사회 내 희소자원의 권위적 배분을 둘러싼 갈등과 타협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이 자원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역학관계의 총체인 셈이죠. 따라서 정치는 경쟁과 협력이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역동적인 장(field)으로 이해됩니다.


반면 통치(government)는 규범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국정을 관리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정부는 정치적 의사결정을 통해 형성된 법과 예산의 범위 내에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즉 통치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자 민의를 구현하는 집행 기구인 것이죠.


그런데 동양에서는 정치와 통치에 대해 다소 다른 시각이 존재해왔습니다. 동아시아 전통 사상에서 정치(政治)란 '바로잡고 다스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통치자가 덕(德)을 갖추고 예(禮)로써 백성을 교화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안정을 도모하는 행위로 이해된 것이죠.


주목할 점은 정치를 지배와 교화의 일원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는 위정자의 덕치(德治)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조정이라는 관점은 상대적으로 약했던 셈입니다. 군주와 신하,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정치는 통치와 동일시되곤 했습니다.


물론 동양 정치사상 내에서도 민본(民本) 사상 등 통치자의 자의적 권력 행사를 경계하고 민의를 중시하는 흐름이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갈등과 경쟁, 토론과 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인식은 서양 정치 전통에 비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동양적 정치관은 오늘날에도 정치와 통치를 혼동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족한 정책을 펼 때 이를 곧바로 '정치 실패'와 등치시키거나, 정치를 권력 투쟁의 더러운 동의어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공존하는 것이죠. 서양적 관점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정치적 갈등과 토론의 과정이, 우리에겐 불필요한 소모나 분열로 비쳐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본령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 그 자체에 있습니다. 통치를 정치와 동일시하거나, 모든 문제를 정치의 잘못으로 환원하는 인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정치를 권위적 결정과 집행의 일방적 과정이 아닌, 경쟁과 협력의 동학이 작동하는 열린 장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절실한 때입니다.


물론 이는 결코 동양적 정치 전통을 전면 부정하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위민(爲民) 정신, 민심(民心)을 중시하는 가치, 덕치(德治)의 이상 등 동양 정치사상의 정수를 계승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민주적 토론과 참여,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접목한다면, 보다 성숙한 정치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와 통치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 차이를 성찰하는 일은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을 줍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의 본질을 간과한 채 통치의 잣대로 정치 현상을 재단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의 정치 전통을 계승하되, 현대 민주정치의 보편적 가치와 조화시켜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겐 '제대로 된 정치'에 대한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나, 참된 정치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갈등과 대립이 불가피한 정치 과정 속에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더 나은 대안을 향해 함께 모색하는 열린 정치가 우리의 지향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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