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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탈아입구라고 한다. 정작 후쿠자와 유키치는 탈아는 말했지만 입구는 말한 적이 없다. 물론 후쿠자와가 강조한 문명화에는 이른바 유럽화, 서구화가 포함된 개념이지만 궁극적으로 후쿠자와는 근대화와 국가로 이뤄진 국제체제의 진입을 말한 것이지 단순히 입구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화는 결국 국가의 독립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중국과 조선에게 있어서도 이러한 문명화는 필요하다고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다.
탈아론과 이전에 포스팅한 "조선인민을 위해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는 조선의 갑신정변이 실패한 맥락에 있다. 즉 조선의 문명화는 요원해졌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대단히 국가가 야만적이자 봉건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후쿠자와는 조선의 문명화는 멀게 느껴졌던 것이며, 이는 중국에서 변법자강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또다른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중국과 조선이 일본의 문명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이미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문명화의 반대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를 역설하는 국체론을 말하는 황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과 조선의 봉건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후쿠자와는 일본의 문명화를 위해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탈아론"이라는 글이 나온 것이다. 사실 변법자강운동과 갑신정변 이전에는 후쿠자와는 양국의 개화 지식인들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였으며 그들을 후원하기도 하였고, 그들 때문에 중국과 조선은 미래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 개화움직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후쿠자와는 중국과 조선에 대해 일본의 문명화를 위해 수세적으로 이들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탈아론과 이전에 포스팅한 "조선인민을 위해 그 나라의 멸망을 축하한다."는 조선의 갑신정변이 실패한 맥락에 있다. 즉 조선의 문명화는 요원해졌으며, 특히 이 과정에서 대단히 국가가 야만적이자 봉건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후쿠자와는 조선의 문명화는 멀게 느껴졌던 것이며, 이는 중국에서 변법자강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는 또다른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중국과 조선이 일본의 문명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라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판단에는 이미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문명화의 반대하고 천황 중심의 국가를 역설하는 국체론을 말하는 황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중국과 조선의 봉건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후쿠자와는 일본의 문명화를 위해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탈아론"이라는 글이 나온 것이다. 사실 변법자강운동과 갑신정변 이전에는 후쿠자와는 양국의 개화 지식인들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였으며 그들을 후원하기도 하였고, 그들 때문에 중국과 조선은 미래가 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 개화움직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후쿠자와는 중국과 조선에 대해 일본의 문명화를 위해 수세적으로 이들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까지 말한 것이다.
탈아론
1885년 3월 15일
박상원 번역
세계교통은 편리해져서 서양문명의 바람이 동쪽으로 점점 불어와 이르는 곳마다 풀도 기운도 이 바람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없다. 생각하건대 서양의 사회와 문물이 고금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그 거동이 옛날에는 빠르지 않았으나 지금은 매우 활발해진 것은 오로지 교통하는 데에 편리한 도구를 이용해 기세를 타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현재 동양 각국의 사람들을 위해 생각해보면 이 서양문명의 동점(東漸)의 기세에 분노하여 이를 어떻게든 막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게 가능하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세계정세를 살펴볼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문명의 바다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문명의 파도를 타고 문명의 고락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문명은 마치 홍역의 유행과도 같다. 현재 도쿄(東京)의 홍역은 서쪽 나가사키(長崎)로부터 동진(東進)해서 봄기운과 함께 갈수록 만연하고 있다. 이런 시기를 맞아 이 유행병의 해악을 막으려 해도 과연 막을 방법이 있을까. 나는 결코 그럴 방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저 해로울 뿐인 유행병이라 하더라도 그 기세에 놀라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익과 폐해가 동반되는 법인데, 하물며 항상 이익이 많은 문명에 있어서랴. 단지 이것을 그냥 막지 않는 데 그칠 일이 아니라 그것이 만연하도록 힘써 돕고 국민으로 하여금 빨리 그 바람을 쐬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들이 할 일이다.
서양문명이 일본에 들어온 것은 가에이(嘉永)개국에서 시작되어 국민들은 점점 그것을 취해야 할 필요를 깨닫고 점차 활발한 기풍을 띠게 되었지만 진보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고풍노대(古風老大)한 정부가 가로누워 있어서 이를 어찌할 수 없었다. 정부를 보존해야 하는가. 그러면 문명을 결코 들여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근대문명은 일본의 낡은 껍데기(舊殼)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낡은 틀(舊套)을 벗으려면 동시에 정부도 갈아치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곧 문명의 바람을 막아 그 침입을 멈추게 할 것인가. 그러면 일본은 독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계문명의 팽창적 기세가 동양의 고도(孤島)를 홀로 잠자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 일본의 지사들은 국가를 중히 여기고 정부를 가볍게 보는 대의에 의거하여, 또한 다행히도 황실의 신성존엄에 의지하여 마침내 구정부를 무너뜨리고 신정부를 수립하였으며, 정부 내외(朝野)의 구별 없이 모두 서양의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단지 일본의 낡은 틀을 벗는 것뿐만 아니라, 전아시아에 하나의 신기축을 세워 거기서 주의(主義)로 삼을 것은 그저 ‘탈아(脫亞)’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우리 일본의 국토는 아시아 동쪽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국민정신은 이미 아시아의 고루(固陋)함을 벗고 서양문명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불행은 이웃나라에 있다. 하나는 중국이고 또 하나는 조선이다. 이 두 나라의 인민도 예로부터 아시아류(流)의 정교풍속(政敎風俗) 아래 자라온 배경은 우리 일본 국민과 다르지 않지만, 그 인종의 유래가 다른 때문일까, 아니면 동일한 정교풍속 속에 살면서도 전통적인 교육의 취지가 다른 때문일까. 일본, 중국, 조선 삼국을 비교하면, 중국과 조선이 서로 닮은 상황은 조선과 중국을 일본에 비교할 때보다 더 가깝고 이 두 나라 사람들은 개별적이든 국가적이든 간에 개진(改進)의 길을 알지 못한다. 교통이 지극히 편리해진 세상에서 문명의 성과를 견문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도 그 견문은 마음을 움직이지 데 못 미치고 고풍구습에 연연하는 정은 백 년 천 년의 옛날과 다름이 없다. 날로 문명이 새로워지고 있는 활극장(活劇場)에서 교육을 말하게 되면 유교주의라 부르고 교육의 취지는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칭하여, 하나에서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외견상의 허식에 매달려 실제로는 진리, 원칙에 대한 생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덕마저 땅에 떨어져 잔혹함과 몰염치가 극에 달해도 거만하게 자기 반성의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
내가 이 두 나라를 보면 오늘날 보이는 서양문명의 동점(東漸)의 풍조를 만나 도저히 그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다행히 그 나라에 지사들이 나와 국사(國事)를 개진(開進)하는 출발점으로서 그 정부를 대폭적으로 개혁함, 즉 우리의 유신 때처럼 큰 일을 꾀하여 우선 정치를 고치고 그와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을 일신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면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년 안에 멸망하여 그 국토는 세계문명의 여러 나라에 의해 분할되리라는 예상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홍역과도 같은 문명개화의 흐름에 조우해서도 중국, 조선 두 나라는 그 전염(傳染)의 순리에 역행하여, 무리하게 이를 피하기 위해 방안에 틀어박혀 공기의 유통을 차단하여 질식상태에 빠져드는 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레와 수레바퀴, 입술과 이빨 관계라 함은 이웃 나라가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인데, 지금의 중국과 조선은 일본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양 문명인의 눈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어 세 나라를 동일시하여 중국과 조선의 수준과 동일하게 일본을 평가하여 일본에 명령하게 되는 의미가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중국과 조선 정부가 고풍의 전제(專制)정치를 행하고 법률은 믿을 만한 것이 안 되는 것을 보고서 일본 또한 무법적인 국가가 아닌가 의심하고, 중국과 조선의 지배층이 맹신에 빠져 과학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니까 서양의 학자는 일본도 음양오행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이 비굴함과 수치를 모르므로 일본인의 의협심도 함께 매도당하고, 조선의 형벌이 참혹하면 일본인도 역시 무정하다고 단정해 버린다. 이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를 비유하면 한 마을 한 고을의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법적이며 잔혹하고 무정할 때는 설령 드물게 그 마을 안의 한 가족이 정당한 일을 해도 다른 많은 사람들의 잘못에 가려 묻혀버리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그 영향이 간접적으로는 우리의 외교에 장애가 되는 일이 실로 적지 않다. 우리 일본의 일대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을 돌파하는 데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의 개명(開明)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일으킬 시간이 없다. 오히려 그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여 중국, 조선과 상대하는 길도 인접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사정을 헤아려 줄 수 없으며 곧바로 서양인이 상대하는 양상으로 처분해야 할 뿐이다. 나쁜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자도 역시 나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아시아 동방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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