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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를 변호하며. -3- 제국주의라는 레이블.

Fulton 2011. 7. 3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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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를 따라다니는 가장 큰 레이블은 그는 일본의 군국주의를 만든 제국주의자라는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되짚어 보면 그를 지배하는 가장 큰 사상은 ‘자유주의’이다. 가장 큰 선에서 말하자면 제국주의와 자유주의를 당대에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하나의 근대사상으로서, 둘은 같이 기능하고 있었으며 이는 2차대전 이후 자유주의의 반성이 있기 전에는 이 둘은 완벽히 분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근대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추종한 후쿠자와 역시 이 둘이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다. 즉 후쿠자와는 ‘자유주의’인 동시에 ‘제국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이는 비판사상이 아닌 근대사상으로서의 자유주의의 맹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 후쿠자와는 자국의 문명화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문명화를 분명히 강조해왔다. 하지만 논위의 대상이 1차적으로 일본의 국가를 한정하였기 때문에 일본의 문명화를 말한 것이다. 그럼으로서 일본의 독립을 말했고 이러한 독립은 서구에 의한 독립으로서 결국 능동적인 독립이어야 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바는 일본의 독립을 위해서 중국과 조선을 희생양삼았다는 것이다. 사실 후쿠자와는 그런 식의 희생양으로서 동양의 이웃을 대한 것이 아니라, 동양의 문명화 작업이 중국과 조선에서 저지되자 이에 실망하고 이들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하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탈아입구’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후쿠자와는 ‘탈아’는 분명히 말했지만 후쿠자와는 직접적으로 ‘입구’를 말한적은 없다. 그가 말하는 내용 중에서 ‘입구’와 비슷한 관념이 있다면 국제체제로서 서구의 국제체제 질서에 포함되자는 것이다. 즉 서구와 국가로서 1:1 대응이 가능하며 국제체제의 일원으로서 인정 받자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체제는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이뤄진 국제적 체제로서, 지금은 중국이나 한국 역시 이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결국 이는 과거의 조공체제로서의 동양적 국제질서가 아닌 서양적 국제질서에 포함되자는 것이 결국 후쿠자와의 주장이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입구’라기 보다는 ‘대구’다.

게다가 여기에 중요한 오역이 동반되었다. 탈아론의 원문에서 ‘중국과 조선을 취해야 한다.’는 구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我ハ心ニ於テ亞細亞東方ノ惡友ヲ謝絶スルモノナリ)이 구절을 ‘사절해야 한다.’가 아니라 취해야 한다고 해석(사실 이는 근대 일본어 해석에서 나오는 치명적인 오류이며, 사실 이런 오역을 실수로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을 함으로서 후쿠자와는 순식간에 본격적인 제국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이건 사실 치명적인 오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오해에 의해 근대사상가이자 자유주의자로서의 후쿠자와는 불식되고 일본의 정한론의 사상적 ‘아버지’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 정한론을 주장하던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황학론자들은 후쿠자와의 비판의 제 1대상이었으며, 실제로 정한론에 대하여 후쿠자와는 일본의 문명화가 급하지 조선 정벌이 급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는 철저히 문명론자이자 근대주의자였지, 본질적인 제국주의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1,2차대전을 거치면서야 외국에 대한 침략전쟁 자체는 당위적, 국제법적으로 비난받게 되었다. 결국 후쿠자와의 시대에서는 외국에 대한 전쟁도 결국에는 국가의 수단이자 정책으로서 당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판단으로서는 이는 분명히 다른 문제이며, 후쿠자와는 본질로서의 정한론이나 침략정책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그것이 필요하다면 필요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에게 제국주의라는 레이블을 거는 것은 이런 관점들을 생각해 볼 때 다시 재고를 해야하는 게 아닐까? 이는 마루야마의 시각으로도, 고야스의 시각으로도 모두 공통적으로 도출 가능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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