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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Politics of Identitiy

'사적 추모'에 대한 서언

Fulton 2012. 3. 2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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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3국. 즉 한 중 일이 가지는 추모와 기념의 형태는 사실 유사하다. 대부분 이러한 추모의 형태의 원천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사당’과 ‘위패’의 형태이다. 사실 이러한 ‘사당’과 ‘위패’의 추모의 단위는 본래 하나의 혈족, 혹은 인척 이상을 넘지 못한다. 즉 ‘사당’과 ‘위패’로 나타나는 추모의 형태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이며 어떠한 공동체의 합의나 혹은 합리에 의한 추모가 아닌, 당위와 윤리로서의 추모의 성격을 가진다. 또한 대부분의 추모의 대상이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개인을 지향한다.  그리고 또한 대부분 추모와 기념이 추모와 기념 대상이 공동체와 공적 체제에 기여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의 개인적인 ‘희생’과 ‘죽음’을 겨냥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추모를 ‘사적 추모’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는 한중일에서는 보편적인 추모의 형태이다. 집안에서 이뤄지는 제사와 신주, 사당, 신사, 사찰, 기념관, 박물관, 국립묘지 등 이러한 형태의 추모 형태는 매우 흔히 발견된다.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가 한중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에 두 가지 정도의 가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설은 한중일이 전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전통 문화에 이러한 사적 추모적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가설은 한중일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뤄진 Building Nation 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가 국가적 차원으로 채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두 가지 가설은 모두 성립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가설은 이러한 사적 추모가 한중일에서 보편적으로 태동했는지를 설명해주며, 둘째 가설은 이러한 사적 추모가 어떻게 혈족 및 가족적인 의미에서 국가적 영역으로 확대되었는 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서 근대 국가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를 확대 재생산하며 공동체 전체에 보편화하며 침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전통 문화에서 이러한 사적 추모적 경향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일단 세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유교적-불교적 추모 행태일 것이다. ‘사당’이나 ‘위패’라는 것도 본래 이러한 전통적인 추모 행태에서 온 것이다. 이러한 추모 행태는 근본적으로 추모 단위가 가족이나 혹은 혈족 단위로 진행되었으며 국가적 단위의 추모 형태는 문묘나 종묘 이상이지 않았다. 문묘는 사실상 유교적 가치에 대한 추상적 추모이며, 종묘는 왕실에 대한 추모이다. 이러한 문묘나 종묘에 대한 추모 이외에 형태의 공동체 차원에서의 추모는 이른바 신사나, 사찰, 그리고 서원 안의 사당에서 이뤄지는 형태의 추모로 나타나는데 이 역시 근본적으로 공적인 차원의 추모가 아닌 사적 차원의 추모의 성격이 강하였다. 이러한 전통적 추모 행태가 근대와 현대까지 전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 이른바 Nation 만들기 과정에서 이러한 형태가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차원에서의 추모의 형태가 국가적 형태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추모가 공적 영역에서 받아지는 과정에서 사적 추모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의 인식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Nation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필히 중요한 과정으로 이런 과정에서 기념과 추모는 국가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에 필수적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구적인 의미의 ‘공적 추모’가 도입된 것 보다는 기존의 전통적 추모를 국가적 영역으로 확대하여 ‘사적 추모’가 한중일의 국가적 추모 형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두번째 가설의 주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의외라 할 수 있다. 서구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한중일에서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로서 공동체의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것은 보편적인 발상에서 빗나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일이 가지는 추모와 기념의 형태는 분명 서구에서 이뤄지는 추모와 기념의 형태와는 분명 다르다. 다만 이러한 사적 추모의 형태에 국가주의가 개입한다. 기존의 전통적인 유교적인 차원의 추모의 형태인 문묘와 같은 곳에서의 사적 추모에서는 국가주의적인 관념이 강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도덕주의, 윤리주의적 관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현대의 기념관에서 나타나는 추모의 형태는 분명히 국가주의적인 형태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에 적절한 사례가 바로 한국의 독립기념관과 중국의 항일전쟁기념관, 그리고 일본의 야스쿠니 안에 있는 우슈칸이다. 그리고 조금은 예외적이라 볼 수 있는 국가주의가 아닌 국제주의나 휴머니즘으로 나타나는 것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원폭 관련 기념관 들이다.

기존에 있어서 이러한 한중일에 공통된 추모 형태와 그에 따른 정치적인 함의에 대한 고찰은 빈약하였다. 이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한중일의 추모와 기념의 형태에 대한 고민과 고찰은 한중일이 가지고 있는 역사문제의 대한 분석과 이것이 유럽을 비롯한 서구와 왜 다른 현상이 나타나며, 한중일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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