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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Politics of Identitiy

일본의 전쟁책임과 피해자 의식, 그리고 정당화

Fulton 2012. 8. 3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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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지나친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해왔지만, 결국 해야할 작업이기에 일본의 피해자 의식과 전쟁 책임, 그리고 정당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써보도록 하겠다.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 국민들이 가장 많이 도망갈 수 있는 명분은 나치 독일과 달리 전쟁에 국민들이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국민들은 여기에서 자신들이 찬성하지 않은 전쟁에 말려 들어갔으며, 결국 일본 국민은 피해자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실제로 일본 내의 진보적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으로 촉발되는 일본의 전쟁참화에 의한 피해자 의식은 이러한 논리 구조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일본이 피해자이기만 할까? 그것은 아니다. 적어도 식민지 범죄에 있어서 일본 국민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는 문제다. 물론 한국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범죄-전쟁 범죄를 뭉뚱그려 하나로 설명하려 시도 하는 데, 이것 자체가 무리수다. 또한 전쟁 범죄에 있어서도 일본군은 명백히 국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이는 ‘황군’이라는 상징으로 대치되는 데 이렇게 되면 최소한 천황의 전쟁 책임, 국민의 전쟁 책임 둘 중의 하나는 긍정 되어야 한다. 근데 일본은 이 둘 다 교묘하게 빠져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게 나쁜거지. 이러한 변호는 천황이 곧 국민들을 상징하는 상징 천황제라는 이름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논지에서 국민의 전쟁책임이 없음을 빌어 천황 역시 국민의 하나로서 ‘겁박 당해’ 전쟁의 수뇌와 상징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오늘 날 천황의 전쟁 책임이 없음을 변호하는 목소리다. 한마디로 말하면 논리가 없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쟁 책임이란 결국 둘 다 있는 것이 보다 맞는 말이 된다.


  다만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국민의 전쟁 책임이 일본의 2차대전의 전쟁 책임에 있어서 독일과는 비교적으로 과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다만 여기서 또 논리적 괴리가 발생하는 데 그것이 바로 일본 내에서 전쟁책임을 부정하거나, 혹은 전쟁 범죄를 부정하는 우익의 문제이다. 이들이 일본 국민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고 동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일본 국민이 가지는 전쟁 책임이라는 것은 왜곡과 날조를 하고 싶은 욕망에 의해 발생하는 책임이 된다. 나는 일본의 좌파나 진보에서 얘기하는 피해자 의식과 정체성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일본 우익이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일본은 떳떳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일본에 있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의한 피해자 의식을 ‘하이재킹’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런 피해자의식을 끌어오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야스쿠니에 의한 일본의 정당화를 긍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우익은 논리적으로 가당치 않은 것이다. 이른바 야스쿠니의 정당화와 히로시마의 피해자는 공존할 수가 없다. 왜냐면 궁극적으로 야스쿠니에 의해 동원된 국민이 히로시마의 피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의 책임을 야스쿠니는 면할 수 없지만, 일본의 우익은 야스쿠니로 상징되는 전쟁동원의 책임을 면죄하려 노력한다.


 이는 일본의 국내정치로 연결된다. 일본의 진보와 좌파가 말하던 히로시마의 피해자의식은 일본이 가지는 전쟁 책임이라는 원죄는 인정한 동시에 당시의 일본의 수뇌부가 전쟁 책임에 의해 일본 국민이 이렇게 희생당했을 비판한다. 우익은 이와 달리 일본에게 전쟁 범죄와 책임은 아예 없다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사실 내러티브로만 봤을 때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일까? 피해자 의식을 가지지만 동시에 죄의식을 떠안아야 하는 진보의 내러티브? 아니면 단순히 우리는 히로시마의 희생양이며 당당한 일본을 내세울 수 있는 우익의 내러티브? 국민의 ‘죄의식’이라는 측면에서 우익의 내러티브가 사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자민당 정권은 96년에 붕괴되기까지 국내 문제에서는 우익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이를 외교적 문제로 확대하지 않기 위하여 국외에서는 전쟁 문제에 대해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막후에서는 이른바 전쟁의 피해국들의 많은 부분을 들어주려 했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국내 정치가 안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국내정치의 안정성이 붕괴한 현재의 일본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 자극적으로 대두한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과 같은 과거의 일본의 진보 진영도 더 이상 이런 문제에서 우익의 내러티브를 강변하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라는 것 자체가 이런 흐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곧 일본인들이 어느 시점에서 우익화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익의 목소리가 더 커질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되었다가 정답이라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에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라면, 일본의 우익의 목소리에 강하게 반응하고 대응하기 보다는 일본의 진보와 교류를 하면서 ‘합의 가능한’ 과거사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했었다. 그런 답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는 철저히 전략의 문제이다. 논리의 문제에서는 일본의 우익이 가지는 논리의 모순을 드러내 줄 필요가 있다. 결국 일본의 우익이 말하는 것 자체가 단순히 ‘우리는 피해자다.’ 가 아니라 ‘우리 모두 책임이 없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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