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Politics

IR세미나 후기

Fulton 2012. 4. 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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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세미나 후기를 쓰는 지금은 사실 IR세미나가 끝난 지 오래인 이야기이다. 지금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쓰는 ‘명분’이 어디에 있을까하는 고민은 했지만 반성이 있어야 진보가 있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점차 나아지리라는 일종의 신앙적인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합리가 아니다. 일종의 신앙이고 나의 태도(Attitude)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내가 이런 일을 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고민을 했다. 분명 비전공자들보다야 많은 공부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국제정치이론 전반을 꿰뚫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나 역시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랬기에 매 방학마다 텍스트를 혼자 틀어박혀 읽고 되새기고 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방법론 차원에서는 대학원을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상승이 있었다. 이런 내부적인 변화가 분명 나한테 대학원을 끝낼 때 즈음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점진적인 과정이었지만.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생각보다 비전공자들이 국제정치를 다루는 데 있어서 너무 나이브한 분석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냉철하게 사고를 함에도 불구하고 비전공자와 전공자가 공유하는 인식 자체가 너무 달랐다. 이러한 인식의 간극은 단순히 바라보는 시각의 간극의 문제일 수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식체계가 어느 정도 서로에게 공개되고 교류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순히 그것의 교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전달 되어야 했다. 오독을 최소화 하고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그런 것이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곧 가르치러 가는 입장에서 뭔가 마음의 준비 및 훈련이 필요했다. 물론 가서 그 훈련을 받긴 했겠지만 그것을 떠나서, 어느 정도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정도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그런 필요성이 있었다. 즉 나를 아는 시간으로서 이른바 이런 세미나가 필요했다. 이러한 세가지의 필요가 나를 IR세미나에 참여하게 하였다.

카, 모겐소, 왈츠, 왈트, 미어세이머, 코헤인, 나이, 러셋, 하스, 미트라니, 모랍식, 웬트, 잭 스나이더 짧은 시간에 무언가 수박 겉햝기 정도로 한 느낌이지만 나도 내가 아는 지식에 대한 점검으로서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웬트를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하며, 코헤인을 다루고, 모겐소와 카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내가 놓친 함의들을 많이 발견했고 그에 대한 보완이 있었다. 세미나를 듣는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난 적어도 이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이들의 원문을 죄다 점검해야 했다. 그 과정은 무척 유쾌했다. 이미 대부분 한번 정도 읽어본 논문이거나 혹은 처음보는 단행본이었지만, 기존에 쌓여있던 지식체계와 어떤 상이점이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가 방향이 분명히 보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즉 안개 속에서의 항해가 아니라 해도도 있고 위성장치도 있는 완벽한 항해였다. 안전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세미나를 즐 길 수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다면 세미나를 들은 사람들이 연구계획서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까지 보고 싶었다. 그것은 시간이 매우 촉박했고 사실 세미나를 듣는 사람들에게 숙제로 냈지만, 그들이 다해오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시간은 부족했고 내 욕심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난 내 논문 주제 하나는 제대로 검토할 수 있었다. 학문 외적 차원에서도, 학문 내적 차원에서도 IR세미나는 분명 나를 발전하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논문이 끝나고 생긴 유희 시간 동안에 매우 즐거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시 이런 것을 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는 그리 낙관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나름 ‘한 여름밤에 꿈’ 같은 것일 가능성이 큰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척 즐거웠고 내 지적 호기심 차원이나 내가 해야 할 그런 것들이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이 세미나를 들었던 사람들에게 국제정치이론 뿐 아니라 외교정책론 세미나도 내 역량이 되거나, 내가 공부할 시간이 있었다면 해줬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세부전공도 아니고, 나의 역량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적어도 그 분들이 원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즐겁게 가르치고 즐겁게 논 듯하다. 언제 내 전공을 다른 전공의 사람들과 그렇게 논하면서 토론하고 발표할 수 있겠는가? 조금 더 국제정치이론이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가를 다뤘다면 하는 생각은 분명히 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다. 욕심이 과하면 그만큼 스트레스도 받고, 내 역량이 닿지 않는 무리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학문적으로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과욕의 경계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보는 타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설명이 완벽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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