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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단상

대중에 대한 국사 지식 수준에 한탄에 대하여

Fulton 2013. 4. 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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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사 교육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조된다. 그 강조되는 이유는 바로 한국사람의 됨됨이라는 측면에서 강조된다는 것에 있다. 즉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일정 수준의 한국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러한 기억을 공유해야 한다는 어떠한 당위를 많은 사람들이 역설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자가 우려를 표하는 것은 과연 역사가 그런 필수 조건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윤리적 당위까지 확대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우려이다.

 

역사는 하나의 교양이다. 분명 하나의 민족 단위에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결과론이지 동일한 민족 공동체는 일정한 기억 이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집단이 융합되기 위해서 기억이 필요한 것이지 민족 구성원으로서 기억의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에 의한 국민교육에 의해 기억의 공유가 일어나게 되고 민족 정체성의 형성의 근간이 되는 것이지, 민족의 구성원의 자격조건으로서 민족사에서 일정 수준 이상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문제이다.

 

역사는 그렇게 독선적인 것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독선적이고 민족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의 역사를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 다원성 차원에서도 문제이며 더불어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도 독선적인 부분만 강조될 수 밖에 없다. 혹자가 한국전쟁의 발발 연도를 몰라도, 태정태세문단세의 순서를 외우지 못해도, 그리고 임진왜란의 주동자의 성이 히데요시인지 기노시타인지 하시바인지 모른다면 그것은 국민교육의 실패이지 개인의 민족 의식의 결여나, 민족성의 빈약으로 바라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국가가 기획한 국민교육의 실패를 왜 개인의 윤리적 책임으로 모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전체주의적 폭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결국 건전한 내셔널리즘(그런 것이 일단 있다 치자.)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어느 당의 강령도, 군인복무신조도, 주기도문도 될 수 없다. 그것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권력에 의한 폭력이자 독선적인 기획에 지나지 않으며 그러한 결과물은 역사가 아닌 강령이나, 신조나, 기도문밖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를 역사로 두기 위해서는 그것이 합당한 접근과, 탐구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그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그저 무책임한 폭력 이상이 되기는 쉽지 않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런 폭력도 결국 목적에 맞는다면 용인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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