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일상단상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에서

Fulton 2012. 12. 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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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판타지라는 것이다. 다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티인 것이다. 즉 욕망은 판타지이며, 공감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어떤 대중문화에서의 작품이 성공하는 것은 그것의 리얼리티 때문이라기 보다는 곧 판타지에 달린 문제이다. 이른바 막장 드라마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널리 있는 것도 사실 이런 차원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흥행과 인기, 유행은 결국 판타지에 걸린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어떻게 자극하느냐가 결국 대중문화에서의 대중성 측면에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리얼리티가 우수하다면 그것은 훌륭한 마스터피스일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대중성에서 흥행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리얼리티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게 하는 것은 리얼리티 뒤에 있는 판타지와 판타지에 얽힌 욕망 때문이다.

 

물론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전혀 별개인 것은 아니다. 판타지의 구성을 통하여 통렬하게 리얼리티를 드러내 줄 수도 있는 것이고 극단적인 리얼리티 추구를 통하여 판타지와 그에 얽힌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즉 판타지와 리얼리티는 일종의 상호 작용을 하며 서로를 통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에는 판타지는 욕망 없이 성립이 불가능하고 욕망은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여 파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에 따라 인간은 움직이며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리얼리티와 판타지는 개념이 다르지만 맥락 자체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중성이라는 것은 결국 판타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리얼리티와는 맞닿아 있어 보이진 않는다. 다만 그러한 판타지를 형성하는 욕망을 리얼리티는 주조한다. 요새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판타지를 쫓지만 그 판타지는 사실 리얼리티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리얼리티를 벗어난 판타지는 판타지가 아닌 ‘Daydream’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그래서 내 스스로가 리얼리티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지 끊임 없이 되묻곤 한다. 이런 자세가 적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주화입마의 문제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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