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도 짧게나마 썼지만 Wendy Sherman 차관의 발언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이 나오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그래도 이쪽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고 나름 밥을 먹고 사는 입장에서 코멘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쓴다. 필자는 언급되고 있는 여러 분석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여러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가지는 지점이 있다. 사실 일단은 Sherman의 말이 개인적인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당히 미국 국무성 사이트에도 올라와 있는 차관의 공식적인 발언이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 넌센스이다.
다만 이러한 Sherman의 입장 표명이 미국의 입장이 과거에서 변했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본질적으로 반대를 표한다. 사실 한국에서 문제가 된 문단은 다음과 같다. 맥락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앞의 문단과 함께 본문에 삽입한다.
All this is understandable, but it can also be frustrating. Any architect who set out today to design a platform for international security, prosperity, and peace would love to include in her blueprint a harmonious and cooperative East Asia. There can be no question that the world would be safer, richer, and more stable if the United States, Japan, China, and South Korea were consistently pulling in the same direction, and that’s definitely what the majority of the people in the region want. Of course, nationalist feelings can still be exploited, and it’s not hard for a political leader anywhere to earn cheap applause by vilifying a former enemy. But such provocations produce paralysis, not progress. To move ahead, we have to see beyond what was to envision what might be. And in thinking about the possibilities, we don’t have to look far for a cautionary tale of a country that has allowed itself to be trapped by its own history.
일단 이 문단을 분석하기 전에 나는 이 글을 보면서 떠오르는
책이 두 권이 있었다. 한 책은 Victor Cha의 적대적
제휴였다. 그리고 다른 한 권은 Jennifer Lind의 Sorry States였다. 앞의
Cha의 책은 한미일의 70-80년대 관계를 위협균형이론을 통해 유사동맹이론이라는 이론으로
풀어낸 책이고, Lind의 책은 역사 문제가 국제정치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심화되는지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문제를 케이스로서 설명한 책이다.
Cha는 조지타운 대학의 정치학과와 국제 관계 대학원의 교수이자,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아시아 담당국장이었으며 대북 문제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최측근에서 조언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Cha는 한일관계에서의 역사문제는 분명 한일관계를 저해시키며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는 안보동맹을 만드는 방해요소로 바라본다. 그러나 Cha는 직접 “역사적 적대감은 양국간의 갈등 사례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용하지만 협력의 사례들을 설명할 때에는 유용성이 떨어진다.”[1]고 지적한다. 그리고 70년대부터 80년 후반에 이르기까지의 한미일간의 안보협력의 수준이 증대되는 것에 대하여 한미일은 사실상 유사동맹으로 주장하며 이렇게 도출된 유사동맹 모델은 국제적 구조의 산물로 바라보고 있다. 본문을 그대로 옮기자면 Cha는 한미, 미일 동맹은 그 지역 안보 위협의 산물이지만 이 양자 관계의 위협과 공약의 특질은 구조내부에서 다양성을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2] 즉 한일관계에서의 협력의 증진에서 역사문제는 사실 변수는 맞지만 그것이 협력 자체를 강제로 저지할 수 있는 주요한 변수는 아니라는, 즉 궁극적으로 양국간 상호작용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보다 큰 지정전략적 불안감이라는 것이다.[3]
Cha는 여기에 더 보태 반일을 위해 ‘국기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효과 같은 것은 현재 한국정치에 명백히 존재하며, 미래에도 일정 형태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논한다. 이는 사실 Sherman의 문제가 되는 “nationalist feelings can still be exploited, and it’s not hard for a political leader anywhere to earn cheap applause by vilifying a former enemy.”과 거의 일치하는 설명이다. 물론 Cha와 Sherman을 각 정부의 관료들의 대표값으로 보는 데에는 편향적 선택의 오류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추출된 부시 정부의 관료의 인식이나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의 인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이전의 입장에서 변한 것이 아니다. 견지하고 있는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였을 뿐이라는 추측도 가능할 수 있다.
Lind의 주장은 세가지로 요약 가능한데, 첫째는 과거의 국제적인
범죄로 인한 역사문제는 상호간의 위협인식과 연관이 있다. 둘째, 정치적
합의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과거의 역사문제에 대한 사과는 이른바 ‘backlash’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반성하지 않는 추모는 의도의 불신을 가속한다는 것이다.[4] 이를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Lind는 물론 역사문제의 원인의 문제에 대해 가해자인 일본의 책임으로 분명히 바라보고 있지만, 역사문제가 국제정치화 되는 과정은 단순히 가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가해국과 피해국이 만들어는 국제정치-국내정치적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다.
Sherman과 Cha, Lind 모두 정도의 차이는 조금은 있지만 한일간이 빚고 있는 역사 문제에 대해 그것이 단순히 한쪽의 일방적인 책임이 아닌 상호작용의 결과로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Sherman이 이번 담화에서 보여주는 양시양비론이 나타나는 것이다. 분명 원인을 촉발한 방아쇠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문제화’되는 과정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Sherman과 Cha, Lind가 어느 정도 보편적인 인식과 사고를 공유하고 있다면 따라서 역사문제를 대함에 있어서 미국의 태도에 대해 분석할 수 있게 된다.
후쿠다 정부 이후로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미국의 아시아 정책과 마찰을 지속적으로 가져왔다. 이는 아베 정부 2기로 등장한 자민당 정부도 이슈적인 측면에서는 다르지만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Pivot to Asia는 동아시아에 위치한 미국의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을 요구하였고, 여기에서 일본에서 등장하는 역사문제에 대한 국수주의적인 움직임은 미국의 정책적 방향과 분명히 맞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과 같은 동맹국이 이에 대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상황에서 일본이 ‘만들어내는’ 역사문제는 Pivot to Asia를 방해하는 요소였다.
그러나 아베 정부가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우는 동시에 동맹국의 안보분담의 비율을 증가하는 과정에서 역사문제는 미국이 바라보기에는 Cha가 말한 것처럼 결국은 부수적인 변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역사문제의 관리에 있어서 미국은 기존에 사용하던 어느 쪽도 편들어주지 않지만, 일본이 ‘만들어내는’ 역사문제를 최소화하는 관리가 아닌, 그것은 아시아 국가간의 협력에 방해되는 문제이므로 미래를 위해 묻어두고 가는(bypassing for future) 관리의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미국이 변했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지점은 바로 이런 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역사문제에 대한 입장을 Cha와 Lind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면 사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던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과연 변했는가? 역사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방향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인식이나 국가적인 정책기조가 바뀐 것이 아닌 국제정치적인 상황의 변화가 촉발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엄밀히 말하면 바뀐 것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에서의 미국의 동맹구조인 차륜구조에서 일본의 분담과 역할의 확대가 바뀐 것이지, 미국이 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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