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을 쓰다가 이 글을 먼저 써야 할 것 같아 일단 급히 써내려 간다. 글에는 우선 순위라는 것이 있고 이 글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안보에 있어서 위협(Threat)이란 개념은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안보는 위협으로부터 이익과 가치를 보호 또는 증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다면 이 위협이라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 위협은 완전히 실증적이고 계량적인 개념인가? 분명 위협은 어느 정도 질적•양적인 개념에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단순한 핵탄두를 만드는 북한보다는 SLBM까지 개발할 수 있는 북한이 더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히 질적, 양적 개념으로 위협은 결정되는 것인가? 즉 위협은 오로지 실증적인 개념인가? 다음 예를 보고 판단해보자.
영국은 2007년 6월 최신예 핵잠수함 ‘HMS Astute’를 진수한 바 있다. 영국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중 가장 크고 강력한 공격능력을 지닌 ‘HMS Astute’는 영국해협에 잠수한 상태에서 미국 뉴욕 항구를 떠나는 유람선을 포착할 수 있는 탐지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북미지역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유럽연합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영국의 최신예 잠수함에 대해 특별한 우려를 표하지 않고 있다. 만약 이러한 잠수함을 중국이나 북한이 보유했다면 미국은 물론 주변국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중략) 미국이 북한을 위협으로 인식하는 것은 북한의 적성국 정체성, 상호간주관적 정체성의 부재, 미국의 비핵확산 가치 도전이라는 관념적 변수가 보다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는 듯하다.[1]
이러한 관점은 물질적 힘과 물질적 이해를 아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2] 위협을 인식함에 있어서 관념적 변수가 분명히 작동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안보에서의 순수하게 계량적 측면으로만 접근을 하게 되면 북핵능력보다 오히려 다른 강대국의 핵능력이 한국에게 더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국민들은 불확실성의 측면과 밀접성의 측면에서 메르스를 핵무기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 안보를 국가의 층위에서 보는 국가안보에서는 적성국의 핵무기가 전염병인 메르스보다도 위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보를 개인의 측면에서 보자면 당연히 메르스의 위험이 보다 더 직접적이다. 핵무기가 1945년 이후로 사용되지 않았으며, 핵무기의 위상이 재래식 무기와는 달리 정치적 기능이 무기의 능력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핵무기의 위협보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전염될 수 있는 메르스가 개인에게는 더 위협적이다. 특히 건강을 지켜야 하는 최전선인 병원에서 전염되는 메르스가 당연히 더 위협적이다.
모 정치인이 발언했던 것과는 달리 단순히 위협은 온전히 계량적인 개념이 될 수 없다. 개인의 인식에서는 핵무기보다 메르스가 더 위협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위협이 '피지컬'의 차원이라면 우리가 인식하는 북핵 위협은 굉장히 왜곡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북핵 위협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협은 계량적인 것과 더불어 관념적인 변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메르스를 핵무기보다 현재 위험하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다. 오히려 안보의 동태성을 생각해본다면 위협이라는 것이 고정적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는 국제환경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외부 변수를 고려해 본다면 정책결정자의 시각으로서 부적절할 수도 있다
개인을 중시하는 인간안보의 시각이 아닌 국가안보의 층위에서 살펴봐도 안보와 위협을 고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접근으로서 한계를 가진다. 국제정치학자인 Barry Buzan은 국가안보의 개념을 설명할 때,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더불어 ‘국가 내부의 취약성’을 강조하였다.[3] 국민들의 인식에 있어서 현 정부의 메르스 대처는 어느 정도 문제를 노출한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지점을 취약성의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 지난 번 글에서 언급한 안보화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러한 맥락에서 메르스 문제가 안보화가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안보에 대한 많은 맥락은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한 부분도 많다. 다만 비전통적인 안보 연구가 등장하면서 시공간적 맥락에 따라 시각 사이의 긴장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4] 이러한 차원에서 바라보자면 안보는 기본적인 다각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실증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안보가 가지는 다각적인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결정은 현실의 안보문제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결정이 될 개연성이 크며, 이는 국가의 위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함에 독선을 표출하는 것이 대중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정책결정자가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게 국가안보의 층위에서나 인간안보의 층위에서 현명한지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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