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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Korean Politics

친일파 = 군부독재라는 '신화'에 대한 짧은 반론

Fulton 2014. 6. 6.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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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이야기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사실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야기지만 바로 한국의 군사권위주의정부와 친일파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에 광복군은 한국의 주류 세력으로부터 완벽히 밀려났으며 친일파 세력이 한국의 근대사에서 권위주의 정부로 이어졌고,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어렵게 살 때, 친일파들은 한국사회의 주류로 득세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이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난 여기에서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첫 번째 인물은 백범 김구의 둘째아들인 김신이었다. 현재 백범 김구기념관장이고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어르신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5.16 당시 쿠데타에 동조했으며, 그 이후에도 중화민국 대사와 장관,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유신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이 지명한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러한 이력만 봐도 과연 친일파만이 군사독재와 연관이 있는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김신은 백범 김구 생전에 비서를 오랫동안 봐 왔으며, 김구의 행적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였다. 그런 그도 권위주의정부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두 번째 인물은 안중근의 5촌 조카인 안춘생이었다. 이 인물을 만난 것은 역대 학교장실에 딱 걸려 있던 사진이었다. 이름을 보자마자 안중근과 관련이 있음을 직감했다. 안중근의 아래 항렬이었고 초기의 육사교장은 많은 부분 광복군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이런 추측에 대해서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조사해보니 안춘생은 1936년 중양[中央]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대일전에 참전했다. 1938년 중국군 육군대위로 후난 성 경비사령부에 복무중 임시정부의 비밀지령으로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상하이에서 거사할 폭탄을 홍콩[香港]까지 운반했으며, 임시정부와 상하이와의 통신 암호문을 가지고 상하이 특수공작반에 전달함으로써 통신을 가능하게 했다. 예상했던 대로 1940 10월 중국군 육군소령으로 한국광복군에 편입한 후에, 1941년 제1지대 간부로 배속되어 산시 성 다퉁으로 파견되었다. 산시 성 등지의 사병을 모아 훈련시키는 한편 정보수집·적정정탐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2지대 제1구대장을 지냈으며 8·15해방 후 주령지대장(駐寧支隊長)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했다. 귀국 후 민족청년당 훈련부장을 지냈다 그리고 한국전쟁기에 육군사관학교장을 지냈다.[각주:1]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이 분은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고 이 분 역시 유신정우회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이 분의 경력을 생각해본다면 이 지점은 분명히 오점이었다. 이 뒤에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냈고, 대한노인회 회장을 지냈다.

두 명의 공통점은 광복군 계열이었다는 것, 그리고 모두 건국 직후에 군에 종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이 군부독재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그러나 이 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친일파와 군부독재가 하나의 라인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분명 군부독재에 참여한 세력은 과거의 친일파뿐만 아니라 광복군 계열도 분명히 존재하였고, 이들은 군부독재에서 코어 오브 코어는 아닐 수는 있겠지만, 그들 역시 군부독재에 참여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만이 독립운동가 출신 중에서 군부독재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른바 친일파-군부독재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악마가 존재한다고 간주하는 것은 한국사를 통찰하는 데 있어서 그다지 유효한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논하는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본다.


  1.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4a3277a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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