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의 최근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인해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북한의 여러 도발 이후 ‘사과’로 간주될 수 있는 발화들을 한적이 있었고, 이번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서 ‘유감’ 표명이 과연 ‘사과’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이 ‘미안하다’는 발화를 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김신조 사태로 불리는 1. 21 사태에 대해서다. 사실 이는 공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기에는 부적절한 부분도 있지만, 이후락 중앙정보부 부장이 방북 했을 때 김일성은 1. 21사태에 대하여 "청와대 습격은 우리 공화국 내부의 극좌 분자들이 임의로 일으킨 사건이오. 박 대통령을 죽인다고 남조선이 없어지겠소? 나를 죽인다고 우리 공화국이 없어지겠소?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같은 논리란 말이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뒤 관련자들을 모두 철직시켰소. 남조선으로 돌아가거든 박 대통령에게는 미안한 일이 되었다고 꼭 전해주시오." 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발언이라 하기에는 약간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 이외에도 북한의 사과와 비슷한 유감 표명은 있어왔지만 이것이 과연 사과의 요건을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으며, 이번 회담 이후 그 논쟁이 불거진 감이 있다.
대부분의 국제정치에서의 사과와 화해에 대한 연구는 일본과 독일의 사례로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방법론과 사례가 적다는 문제에 의해 사실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에서의 사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기에는 사례가 적은 데이러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결국 국제정치에서 사과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지 않고, 요구되더라도 사과를 할 필요성을 가해국이 대부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무정부적인 국제정치에서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다른 제재방법을 고려하는 경우가 먼저이며, 사과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사과를 했을 때, 국제적으로 이에 상응하는 대가나 공공재를 제공할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Jennifer Lind의 경우처럼 사과가 이뤄졌을 때, 그 사과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한 국내정치에서의 반발이라는 국내정치 층위에서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원인에 의해 국제정치에서의 사과를 발견하기도 연구를 발전시키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공적 사과의 요건과 분류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연구들이 존재한다. 네가시(Negash)는 국제적 문제에서 공적 사과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잘못 평가하기(reckoning) 진실 말하기(truth telling), 공적 기록 남기기(public record), 책임지기(accountability)을 통해 사과가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잘못 평가하기는 공적 사과에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잘못 인정과 함께 공동체의 도덕적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실 말하기는 과거 잘못에 대한 인정과 함께 과거의 잘못을 공적으로 모두 밝히는 것이다. 공적인 기록 남기기는 공적 사과라는 특징이 작동한다. 공적인 사과에서는 사과의 주체가 집단적이기에 모호성문제를 가질 수 있으므로, 공적 기록을 통해서 과거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수정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책임지기는 누가 사과의 주체인가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이는 공동체의 과거 사람들이 잘못한 일을 현재의 사람들이 승계하고 인정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1
첫째, 피해국 또는 피해집단의 손상된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이를 통해 피해 측은 잘못이 없으며, 가해자 측이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서 많은 가해 행위자들이 의도적이든 실수든 올바른 사과를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행위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인 가해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경우, 피해의 사실을 의심하는 경우 또는 조건부로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구체적인 행위에 대한 언급은 배제한 채, 무조건 ‘미안합니다’, ‘사과합니다’ 등의 애매하며 미완성의 방식으로 잘못을 말하는 경우, 피해 측에서는 사과로 인한 만족을 얻을 수 없다. 가해자가 입힌 피해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까…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피해를 의심하는 경우는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피해자를 오히려 잘못의 원인으로 만드는 매우 부적절한 사례이다. 한편, 조건부 인정은 ‘만일 실수가 있었다면…’ 등의 표현이 포함되는 것으로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고, 피해자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으로 사과해준다는 느낌을 줄 수 있으므로 이 역시 적절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둘째는 ‘후회’의 표현이다. 가해자 역시 과거 행위에 대해 심적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희생자가 알 수 있게 해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시켜서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후회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데, 후회는 사과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과가 빈 말 혹은 정치적 수사로 폄하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상의 약속 혹은 차후 대책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세 번째 조건이다. 물적, 정신적 피해를 갚는 것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이미 발생한 손해를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행동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같은 과오를 범하거나 사죄 성명에 반하는 발언이 나오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사과를 했어도 그 사과가 ‘단순한 퍼포먼스’에 그친다면,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만약, 사죄성명을 발표한 이후에 국가의 행동이 이에 반하거나 혹은 정책이나 보상 등의 형태로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과가 아닌 위선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것이다. 특히 공적 사과 중 외교적 사과는 법적 책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하며,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법적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후회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절충은 사과라고 볼 수 없다.
네가시와 천자현이 제시한 조건들을 살펴봤을 때 북한의 ‘유감표명’은 공적인 사과로 보기에 어려운 면이 적지 않다. 이번 유감표명뿐만 아니라 기존의 사과들 역시 공적 사과라기보다는 사적 사과적인 측면이 적지 않거나, 아예 사과의 요건을 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함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군사도발의 가해국임을 전제로 할 때 이는 첫째, 북한의 자신들의 행동을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아하며, 두 번째로 북한이 유감표명 이상의 공적 사과로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공적 사과를 함으로서 잃는 것보다 적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게 평양식(平壤式)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을 그들의 공적 사과라 하기에는 엄밀히 말하면 애당초 이것을 ‘사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평양식 사과라기보다는 평양식에는 유감이 있을 뿐 외교적인 차원에서의‘공적 사과’를 하지 않는다라고도 볼 수 있다. 이를 다만 단순히 평양식이라는 특수성의 문제로 한정하기에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는 냉전기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여줬던 전반적인 특성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권위주의 및 전체주의 국가들이 공적 사과를 선호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애당초 국제정치에서의 공적 사과의 사례가 많지 않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즉 북한의 ‘유감’이 공적 사과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에서 기인하는 지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한 연구가 필요하다.
하나 더 말하면, 북한의 ‘유감’이 과연 ‘사과’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떤 중요함을 가지는 지 고민해 봐야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사과를 받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러한 사과 자체가 중요한 것인지 사과에 의한 결과가 중요한 것인지 보다 더 생각이 필요하다. 엄밀히 말하면 ‘사과’라는 발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과에 의한 ‘책임’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다시 되물어보고 싶다. 그것은 역사문제로서 얽혀 있는 일본도 그리고 북한도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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