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는 인류상 실전에서는 단 두 번 외에 의미 있게 사용된 적이 없다. Brodie의 말처럼, 그러나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로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1] 그러나 그것은 핵무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핵무기의 위력을 모두가 인식할 수 있었고 또한 핵무기가 세계를 말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을 처음으로 개발한 미국은 50년대 초반에 2차대전의 승전국이자 당대최고의 경제강국이자, 동시에 군사력으로도 핵을 유일하게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자국의 국력을 투사하여 이른바 패권국가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능력에 기반하여 미국은 한동안은 ‘강압’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2] 그러나, 소련의 핵개발과 이어진 스푸트니크 쇼크 등을 통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은 아니게 되었다. 이어서 여러 강대국의 핵개발이 이어졌고, 더 이상 시대는 단일 국가의 핵무기에 의해 추동되는 시대가 아니라 상호확증파괴를 통한 ‘핵억지’에 의해 세력균형이 나타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서 핵무기를 레버리지로 삼아 강압/강제를 비롯하여 협박을 하는 사례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우선 핵을 보유한 강대국이 일단 한정적이었고, 이러한 핵을 보유한 국가가 강압을 해야하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상대 역시 핵을 보유한 강대국인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핵무기를 레버리지로 강압을 성공하기가 이론적으로 쉽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50년대 후반에 이스라엘을 움직여 수에즈 위기를 초래한 영국과 프랑스에게 소련의 흐루시초프가 핵미사일을 근간으로 위협하기도 하였고 실제로 군사분쟁이 중지되었다. 허나 이를 단순히 소련의 ‘핵강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실제로 미국도 여기에 소련과 어느 정도 입장을 공감하였고 국제사회적인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렇기에 ‘핵강압’이 수에즈위기를 중지시켰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다.[3]
많은 국제정치이론을 다룬 학자들도 ‘핵강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핵의 억지능력을 부정하진 않지만, 핵에 의한 강압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자면 핵의 사용은 결국 국제사회와 강대국에 의한 보복파괴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먼저 사용할 수 없기에, 행위자 입장에서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그렇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4] 또한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른바 핵이 ‘타부’[5]로 여겨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과연 핵에 의존한 강압이 실체적으로 먹힐 수 없으며, 이미 핵 보유만으로도 국제레짐과 규범에 의해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강압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국제정치학의 두 이론적 배경으로 볼 때도 ‘핵강압’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두 방향의 이론적 분석으로 이뤄진 핵강압에 대한 부정은 과연 실증적으로도 맞는 설명인가? 2013년에 이 바닥에서 가장 메이저한 저널인 International Organization에서 발표된 Secher & Fuhrmann의 “Crisis Bargaining and Nuclear Blackmail”은 계량연구 측면에서 과연 핵강압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는 지, 강압이 성공한 사례와 핵무기 보유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페이퍼이다. 이 페이퍼에서는 역사상 많은 강압에서의 성공여부는 핵보유와 무관함을 설명한다. 강압의 성공/실패 여부를 가르는 변인으로서 ‘핵보유’는 사실상 상관관계가 없으며, 이는 ‘핵강압’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장이다.[6]
계량연구뿐 아니라, 역사적 분석으로도 1950년대 후반 이른바 핵확산이 이뤄지면서 ‘핵강압’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 설명이 주를 이룬다.[7] 오히려 핵강압보다는 상호 핵억지에 의한 군비경쟁이 상대 진영을 소모하는 정책으로서 더 의의가 있었다는 것이 보수적인 미국의 외교정책 연구자들의 설명이다.[8] 핵으로 강압하는 것이 아니라, 핵의 여러 층위의 단계의 군비경쟁을 통해 상대방의 국가능력을 소비시키고, 이를 통해 상대를 붕괴시키려 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설명력이 있다. 즉 역사적/계량적 설명 모두 ‘핵강압’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를 북한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핵보유에 의해 한국에게 핵강압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한미동맹의 맞춤형 확장억지를 무시하는 것과 다름 없다. 그리고 동원 가능한 국가자원 역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할 수가 없는 상황이며, 이는 군비경쟁으로 이어져도 북한과 한국과의 군비경쟁에서 한국이 진다고 분석하는 것은 ‘선동과 날조’에 가깝다. 또한 여기에 미국의 확장억지력을 포함하면 상호 억지에서 북한의 ‘핵강압’이 이뤄진다고 믿는 것은 차라리 허구에 가깝고. 실제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동기 중 가장 큰 이유로 ‘핵강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드는 생각은 “정말 공부들 안하시는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비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면 저분들이 국제정치학의 분석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 하지만, 관료 출신들이 저런 식의 말을 하는 걸 보면 실소가 나올 뿐이다.
기본적으로 핵은 선제적 사용을 하는 순간, 그 국가는 국가와 체제의 절멸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상대가 이른바 핵우산을 공약 받고 있으며, 핵을 보유한 강대국을 강력한 군사동맹으로 둔 국가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핵 억지’를 핵무기의 가장 큰 기능으로 언급하는 것인 동시에, ‘핵 강압’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북한의 핵을 ‘겁박용’이라고 설명한다면, 과연 그 사람을 북핵문제에 있어서 통찰력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런 자칭 ‘전문가’들이 너무 많은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 씁쓸할 뿐이다.
[1] Brodie, B. ed., (1946), The Absolute Weapon: Atomic Power and World Order (New York: Harcourt, Brace, 1946); p. 5.
[2] Gaddis, J. L. (1987-1988), “Containment and the Logic of Strategy,” The National Interest, No. 10(Winter).
[3] Gaddis, J. L, (1989), The Long Peace: Inquiries into the History of the Cold War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4] Waltz, K. N. (2010). “Nuclear Myths and Political Realities.”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4(3), 740.
[5] Tannenwald, N. (2007). The Nuclear Taboo: The United States and the Non-Use of Nuclear Weapons Since 1945.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7.
[6] Sechser, T. S., & Fuhrmann, M. (2013). Crisis Bargaining and Nuclear Blackmail. International Organization, 67(2013), pp. 191-192.
[7] Walker, W. (2014). “International affairs and “the nuclear age”, 1946-2013. International Affairs, 90(1), pp. 107–123.
[8] Wohlforth, W. C. (1999). “Stability a Unipolar World.” International Security, 24(1), p.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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