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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아이돌이라는 개념의 한국과 일본의 괴리

Fulton 2018. 6. 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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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듀 48의 기획이 소문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때부터 가장 우려했던 지점은 일본의 아이돌과 한국의 아이돌의 개념이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한국의 대중에게 이해시키는가에 대해서였다. 심지어 프듀48의 계획은 그것을 넘어서, 일본에서 현재 데뷔하고 있는 아이돌들을 한국의 연습생과 같은 현장에 투입한다는 것이었으니, 더더욱 그 괴리가 심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은 비슷했던 시기를 거쳐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일본의 그것을 긍정적으로 말하면 레퍼런스화했고, 나쁘게 말하면 심하게 베꼈다. 냉정하게 말해 80년대의 스잔의 김승진이나 긴기리기니(함모 가수가 그대로 베낀)의 콘도 마사히코는 이질성보다는 유사성이 더 컸다. 그리고 이용과 사이조 히데키 등등을 비교해보면 양 국의 이질성보다는 유사성을 더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약간 다른 차이 하나는 한국이 일본을 레퍼런스로 삼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시기가 약간 늦었다.



(콘도 마사히코는 한국의 로라장을 불법적으로 석권했었다.)


한국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신세대’의 문화라는 것이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영에이지의 대중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메이저 컬쳐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서브컬쳐의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나 90년대는 이른바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동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신세대’의 대중문화는 서브컬쳐가 아니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경제 발전에 의한 귀결로 소비세대의 주역으로 신세대의 부상과 더불어, 이들의 문화가 다른 세대에 비해 파급력이 더 컸기 때문이라는 양 쪽의 결과로서 나타났다.

이 신세대의 문화에서 튀어나온 아이돌은 일본의 것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나타났다. 미국식으로 말하면 싱어송라이터로의 아이돌이었고, 일본식으로 말하면 아티스트로의 아이돌이었다. 이는 물론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버디 홀리, 그리고 짧게 거슬러가면 존 덴버와 같은 아티스트도 있었고, 일본에서도 노무라 요시오나 나카모리 아키나 같은 엄밀히 말하면 아이돌에서 아티스트의 경계로 넘어가는 형태의 엔터테이너들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 시기에 일본과 달리 등장한 아이돌은 엄밀히 말하면 젊은 아티스트들이었다. 전영록을 시작으로 신해철, 이승환, 서태지, 윤상, 김현철 등등은 아이돌의 탈을 쓴 아티스트들이었다. 여기에 듀스나 015B, 현진영까지도 이 카테고리에 넣는다면 한국의 90년대 초반의 아이돌 문화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아이돌을 강제하고 있었다.



윤상은 분명 아이돌이었다.


이는 90년대 중후반에도 레거시를 남겼다. 96년 이후로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에 대해서 많은 대중들은 그들에게 아티스트적 면모를 요구하였다. 실제로 H.O.T나 SES, 젝스키스 등등은 컨셉은 일본의 그룹 아이돌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음악은 미국의 POP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기점이었지만 대중은 여전히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작곡을 만들어야 했고, 프로듀싱을 해야했고, 가창력을 입증해야 했다.

일본은 이와는 달리 아예 다른 세계로 나아갔다.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아티스트로 존재하는 세계를 가지지만 아이돌은 이른바 아예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언젠가 만나본듯한 친숙한 아이돌을 지향했던 모닝구 무스메를 필두로 하는 하로프로의 대두는 이전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낳았다. 남성 아이돌의 세계를 지배한 쟈니스 역시 SMAP 이후로는 단순히 ‘멋진’ 아이돌이 아니라 예능에서 구르고 친근해 보이는 아이돌이 나타나야 했다.

한국의 아이돌 문화는 결국 이러한 흐름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아이돌의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으로 ‘아티스트적 면모’를 가져야만 했다. 이는 다만 남자아이돌과 여자아이돌의 차이가 존재하였는데 100일 콘서트의 god도 그리하였고, 동방신기, 빅뱅, 샤이니 그리고 오늘 날의 엑소와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아이돌은 어느 정도 이상의 자기완성적인 창의성을 제시해야 했다. 여자아이돌도 정도의 차이에서는 이보다는 약하지만 여전히 이러한 부분이 존재한다. 보아가 그랬고,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에게도 이러한 면모가 어느 정도 요구되었다. 특히 이들이 데뷔를 한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티스트적 면모는 강조되었다. 이들이 해체하거나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면 더더욱 이러한 측면은 강조되었다.




(원더걸스의 1집과 마지막으로의 모습을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괴리는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대부분의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의 카테고리에서는 아티스트로 분류되는 결과를 맞게 된다. 일본의 관점에서는 이들의 실력과는 별개로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자기의 세계관을 제시하는 한국의 아이돌이 일본에서는 아이돌일 수 없었다. 특히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아이돌을 강조하는 48 계열의 아이돌의 등장과 지하아이돌의 확산은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의 개념을 완전히 갈라놓았다. 한국의 아이돌에게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요구되며 그러한 요구를 충족할 멤버를 반드시 넣고, 가창력을 강조하여 메인보컬 중심의 곡이 완성되며, 힙합이 트렌드가 되면서 수준있는 랩핑이 가능한 멤버로 꽉꽉 채워넣고 현란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한국의 아이돌과 달리 일본의 아이돌은 악수회와 하이터치회를 중심으로 하고 예능의 중심과 감칠맛, 그리고 각자의 극장에서의 직접 만난다는 목적으로의 공연이 중요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 결과 공개방송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국의 아이돌과 극장공연과 예능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아이돌로 명백히 이질적인 모습을 완전히 가지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90년대 초의 결정적 국면의 순간이 오늘 날의 한국과 일본의 연예계에서의 아이돌의 개념을 완전히 분리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선택한 길이 일본의 아이돌과 다른 길로 가게 되었고, 그 뒤에도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을 참고하려는, 대표적으로 졸업이나 멤버 체인지 등을 추진했던 몇몇 프로듀서들을 좌절 시킨 팬심은 아이돌의 아티스트적 면모가 아이돌의 중심적인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두 세계의 충돌이 지금 프듀48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름 저기에 있는 나온 일본의 멤버들이 그 세계 안에서는 수준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친구들이지만, 그것은 한국의 수준에서 보자면 대체 저들이 어떻게 데뷔하였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아이돌은 과연 아티스트이지 저들을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분기된 세계의 충돌이자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HKT48이 일본에서 퍼포먼스로 뭐라 말을 들을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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