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포페에게
어느덧 가을이라니. 편지를 못쓰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음악도 많이 들었고 스포츠 경기도 보러 여기저기 다녔다네. 뭔가 다양한 삶을 즐기고 있는 듯 하네. 좀 다양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난 그냥 여기서 이렇게 편지나 쓰는 신세지. 편지가 늦어 많이 미안해서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거니 이해를 해주게. 한달동안이 편지를 달라는 자네의 재촉을 받으며 조금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네.
이번에는 수도권의 정치성에 대해 얘기해 보겠네. 서울과 수도권은 사실 어떤 특정한 정치적인 포지션을 한국 정치에서 취한 적은 크게 나타나질 않네. 물론 여기서 특정한이라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의미일세. 물론 이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지금은 상수로서 작동하는 실체가 바로 지역이기 때문이겠지. 여기서 말한 지역은 하나의 ‘local’로서 작동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결국 서울과 수도권은 이 지역에 대응하는 개념이 되는 거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서울과 수도권의 정치적 행태는 중요하지만 정치성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지. Lipset과 Rokkan의 저술에서 드러나는 균열로서 중앙과 지방의 균열은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어디까지나 지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중앙은 그 초점이 맞춰있지 않았지. 물론 이러한 이유는 한국의 특수성인 근대화의 압축적 진행이겠지만 말이야.
해방 이후 서울과 수도권은 원래 정치성 자체가 부재했다고 보는 게 맞을 걸세. 인텔리들 중 많은 수는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사라져버렸지. 그렇기 때문에 서울과 수도권 특유의 정치성은 사실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걸세. 한국 건국 초기에는 분명히 없다고 보는 게 맞을거야. 물론 여기서 분명히 말하지만 이 당시에는 수도권은 없었네. 어디까지나 서울이라고 해야겠지. 일제 이후에 정치적 권위가 서울이라는 지역에 있어서는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물론 그러한 권위의 부재가 4.19나 기타의 항쟁의 서울이 중심적 역할을 한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이겠지만.
서울이 산업화되면서 지방인구가 점차 유입되었지. 여기서 분명히 나타나는 서울의 정치성은 도시 농촌 사이에 나타나는 정치적 균열이었지. 간단히 요약하면 도시는 야당을, 농촌은 여당을 지지하는 그런 움직임이었지. 사실 이는 이승만-조봉암 대결부터 분명히 나타나네. 박정희-윤보선에서도 이는 분명히 나타나는 바이고. 그리고 이는 서울 뿐만이 아니라 지방의 대도시 역시 나타나는 하나의 행태였지. 결국 서울 고유의 정치성은 역시 아니라는 말일세. 하지만 서울의 정치적 성격이 드러나는 거의 첫번째 행태이니 이를 서울의 정치성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할 걸세.
박정희-김대중 이후로 지역감정의 정치 반영은 본격적으로 되었지. 지방인구가 서울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서울도 이러한 반영에는 예외일 수 없었겠지. 결국 서울도 지방의 지역감정이 그대로 정치성에 유입되었네. 여기에서 도농간의 정치적 균열이 다소 완화되는 측면도 분명 있었지만 말그대로 다시 서울의 정치성은 혼돈이 되었네. 이쯤해서 수도권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했지. 서울로 인구가 몰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서울의 외곽지역에 수도권이라는 지역이 형성되게 되었네. 인구의 파급효과에 의해 형성된 수도권은 서울과 많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밖에 없었네.
이러한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폭발은 지대의 상승을 가져왔고 결국 지대라는 경제적 가치가 정치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지. 간단하게 말하면 ‘집값.’ 이는 사실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가 유입되던 시기부터 발생하던 개념이지만 사실 서울과 수도권에 있어 ‘집값’이 제 1변수로 차지하게 된 첫번째 신호탄은 서울이 아니라 분당 신도시에서 출발하네. 분당이라는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부동산은 중요한 관념으로 출발하였고 이에 분당과 인접한 서울 지역이 이러한 파급효과에 맞닥트리게 되지. 그러면서 이른바 강남 3구는 이러한 이슈 투표 행태를 보여주게 되네. 서울에서 시작한 파급효과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바로 뇌관은 바로 분당이었던 거지. 분당에서 일어난 spill-over는 놀랍게도 서울의 정치성으로 그대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걸세. 즉 서울의 파급효과가 아니라는 거지. 단 서울과 수도권의 그 동안 축적되어온 지대와 관련한 정서가 분당에 투영되었을 수는 있을 걸세. 하지만 그 시작은 찬찬히 팩트들을 뒤져보다보면 분당이 시작이라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거야. 그놈의 ‘은마아파트’도 결국 분당 신도시 이후의 일어난 일이고 서울의 재개발 열풍 거의 대부분 다 분당 이후에 발생한 바로 아파트 붐 때문이었지.
그리고 이어진 ‘뉴타운 정치’는 이러한 양상을 서울 전역에 확산시켰네. 서울의 정치성은 이렇게 확정되었지. 그리고 동시에 수도권 전역에도 이러한 영향을 미쳤지. 교하 신도시니 이러한 모든 행태는 사실 이런 점에서 비롯된 거라고 볼 수 있을 걸세. 뭐 이렇게 보는 시각에 문제는 없겠지. 서울 자체의 정치성은 겨우 5년도 안되었단 얘기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기존에 있었던 지역감정적 변수와 경제적 이슈가 부딪히며 나타나고 있네. 하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볼 때 서울과 수도권, 지방의 차이를 본다면 지대 변수가 바로 독립변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네. 결국 서울의 정치성은 경제종속적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 이를 혹자는 ‘천민자본주의’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지만 난 조금 다를세. 서울과 수도권의 정치성은 원래 그 자리가 사실 비어있었기 때문에 경제 이슈가 종속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즉 무가치적 성향에 경제 이슈가 그 자리를 침투하면서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보네.
서울과 수도권의 정치성이 형성된 이후로 한국은 많은게 바뀌었네. 그러한 이유는 서울과 수도권이 자신을 인식함에 있어서 서울과 수도권의 관념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관념으로 치환하여 인식한다는 것일세. 결국 자신들의 정치성을 한국의 정치성으로 인식한다는 거지. 이를 사실 지역의 정치성인 지역감정보다 우월한 정치적 관념으로 인식한다는 것도 사실 충격적인 것이고. 사실 별다를게 없네. 둘 다 똑같은 이익 투표행태인데 말일세. 서울의 관념적 우월성은 엄밀히 말하면 서울의 물적가치이지 그것의 인적 가치가 아닐세. 교육? 그것도 실재하는 것이 아닐세. 문화? 그것도 사실 인프라의 문제가 아니던가? 다음 편지에서는 서울이 가지는 우월성과 그에 대한 허상에 대해서 논해보도록 하겠네. 다음 편지는 조금 늘어지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데에서 걱정스럽네. 오늘 좀 피곤하네. 다음 편지에서 보도록 하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