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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Korean Politics

다섯번째 편지

Fulton 2010. 11. 2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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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문제가 복잡해진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느낌이네.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의 문제도 많이 심화된 느낌이네. 어느새 서울이 비교우위로 내세우는 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논하게 되다니,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만 여기서 그 세월은 흔히들 말하는 세월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논하는 언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느낌이 드네. 그냥 한가지 드는 생각이 있는 데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좀 당부하도록 하겠네. 우리의 일상이 이 논의를 함몰하지 않았으면 하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니 영향을 받지말라, 그것을 단절하라고는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바이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논의라는 본질에 있음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하길 바라네. 물론 역으로 일상이 논의에 개입하는 것도 논의의 흐름에 있어 장애가 될 수 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네. 둘다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어 경계해야 할 바이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직접적인 쓸모가 있는 말만 하기를 바라네. 하지만 우리의 논의는 생활과 삶에 있어서 아주 밀접한 환경을 가지지만, 그것이 우리의 논의의 제약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난 가지고 있네. 논의와 일상이 독립함에 있어 그것이 가져오는 이득이 그것이 같이 하는 것이 주는 이득보다 크다고 생각하네.

서울이 지방에 비해서 완연하게 우위인 부분 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큰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 문화적인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는 상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의 중심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일세. 게다가 대부분의 주요 대학이 모여 있다는 교육적 요소도 간과하면 안된다는 생각이네.

사실 서울이 지방에 비해서 허위가 아닌 본질적인 의미로서 가치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교육이고 또한 그렇다 말하네. 나 역시 많은 부분에서 동감하네. 서울같이 대형서점이 많은 동네도 없고,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은 지방의 대학과는 많은 차이를 분명히 보이고 있지. 이는 분명히 부정할 수 없는 바지만 사실 이런 비교에는 한가지 간과하는 부분이 존재하네. 서울과 지방의 대학교육의 차이 역시 서울에서 확산되어 지방의 대학교육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과 지방의 간극이 점점 심각한 수준으로 커진다는 것이지. 물론 한국과 같은 국토의 국가에서는 지방에서 대학이 발전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지만 최소한 서울의 대학과 지방에서 그나마 나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대하고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은 조금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하네. 게다가 서울에서 서울 외곽으로 이주한 단국대나 혹은 서울 밖에서 생겨난 아주대같은 대학의 발전에 있어서 투입하는 자원에 비해 한계를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은 조금 생각할 바가 많네. 여기에서도 서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아젠다를 가지고 서울과 수도권이 모조리 앞에서 언급한 아젠다를 위해 다른 지방으로 투입되어야 할 자원마저 빨아들이고 이를 한국의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을 제시하는 ‘서울 파시즘’이 발현하는 것이지.

여기에서 사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대학교육도 있지만 난 많은 사람들이 허위로 생각하는 부분을 하나 지적하고 싶네. 바로 입시교육이네. 다들 8학군, 목동 등등 언급하면서 서울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입시교육이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걸세. 심지어 앞에서 언급한 서울파시즘의 중심적인 내용인 부동산과 관련해서 입시교육은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로 언급되곤 하네. 난 이게 얼마나 허위인지 혹은 그것이 허위에서 파생된 행위인지 좀 설명해보려고 하네.

만약 서울의 입시교육이 우월하다는 것은 사교육이 기반이 된다는 것일세. 물론 이러한 판단에는 공교육이 한국의 입시교육에 있어 경쟁력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이를 사교육이 입시교육을 결정하는데 독립변수로 작동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사교육의 발전이 입시교육의 경쟁력으로 이어져 교육에 있어 우위를 점하게 한다는 거지. 여기에 있어 서울과 수도권의 사교육 인프라는 우월하고 발전되어 있으며 지방이 따라올 수준이 안된다는 판단이지. 뭐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전제들을 긍정한다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판단일세.

하지만 말일세. 아무리 봐도 지표적인 선에서는 사교육, 아니 한정지어서 설명하자면 최소한 서울의 ‘사교육’적 기반의 우위는 입시교육의 경쟁력으로 연결되는 것 같진 않네. 서울, 아니 강남 8학군으로 한정지어도 서울의 수능 평균 점수는 높지가 않네. 여전히 수능 평균 점수 및 주요 대학 진학률로만 봐도 여전히 광주나 대구를 못따라가는 수준이 바로 서울의 입시교육의 경쟁력이지. 입시교육이 진짜 교육이냐 하는 논쟁을 넘어서, 서울의 사교육이 입시교육을 지원해주지 않는 것은 사실인 것 같네. 강남? 목동? 노원? 과연 이들이 무엇에 공헌했는가 모르겠네. 재수 교육 시장? 재수생들 평균 수준으로도 서울의 수준은 높지 않아. 다만 양이 원체 많기 때문에 잘가는 것 처럼 절대수만 나타날 뿐이야. 그게 통계적 관점에서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네. 아주 충격적인 현실이지.

서울의 교육적 가치의 우위는 아주 놀라울 정도의 허위이네. 그것은 인구가 많고 산업이 집중함에 따라 발생한 하나의 파생 효과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지가 의문이네. 그것을 가지고 다시 서울의 가치와 우위가 여기서 발생한다 말하는 것은 하나의 허위이자 ‘혹닉’일 뿐이지. 이 ‘혹닉’이 무엇인지는 찾아보도록하게나 이것은 일종의 숙제일지도 모르지. 단순히 입시교육이 약하다고 서울의 교육적 가치의 저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안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교육 교육 할때 꼭 언급하는 입시교육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일세. 사람들이 말하는 대중적인 의미에서의 교육은 서울이 절대적, 비교적으로 우위를 점하지 않다는 거네.

그렇게 부동산이라는 재산,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서울에서 이러한 허위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게 좀 충격적인 것 아닌가? 무형적 가치 중에서 이렇게 서울의 우위를 차지하는 하나의 가치는 의문을 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네. 기존의 서울이 자신들의 우위를 합리화 하고 납득시키는 하나의 이유가 조금 흠집이 갔다고 보면 될 걸세? 아닐수도 있다고? 그것도 인정하는 바이네. 하지만 그렇게 서울의 우위를 합리화하는 이유가 단단하지 않다는 것만 보여주는 것으로 난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난 강남 8학군과 서울의 학원가를 볼때마다 어쩐지 사이비 교회가 떠올라. 경전에도 기초하지 않고, 말씀에도 기반하지 않은 그 믿음. 이미 종교 자체도 합리성으로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는 최소한 종교가 기반하고 있는 그 무언가조차 배반하면서 허위 위에 군림하며 허상을 만들곤 하지. 난 사교육을 비판하고 싶지도 않고 그 본질을 비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그 사교육을 믿고 그 사교육으로 서울이 다른 곳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고 이것이 한국이라는 국가라고 말하는 발상과 관념은 놀라울 정도로 경악스럽네.

갑자기 산책을 하고 싶네. 산책을 할 때는 편지를 쓸 수가 없지. 생각을 조금 정리해 보고 싶네. 아무래도 다음에는 조금 가벼운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나도 좋아하고 자네도 좋아하는 F1이야기를 해볼까? 자네가 좋아하는 알론소는 아쉽게도 우승을 놓쳤고 내가 좋아하는 친애하는 버튼은 조금 약했네. 해밀턴도, 웨버도, 베텔도 멋진 레이스를 보여주었고. 아무튼 그런 F1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거야. 잘 있게나. 다음 편지가 조금 빨리 보낼 수 있는 여유가 나에게 존재한다면. 그럼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 놓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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