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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뉴라이트라는 집단에 대해서 나는 한국 정치라는 독립변수가 만들어낸 하나의 종속변수라고 본다. 한국의 진보라는 세력이 없었다면 그들은 기원도 파생도 불가능하다. 뉴라이트, 특히 뉴라이트에 소속된 지식인 층은 원래 대부분 한국 내부에서는 진보의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돌출된 것도 결국 진보 정권이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뉴라이트의 논리와 역사인식은 지난 진보 정권하에서 돌출되었고 이는 많은 부분 현재의 보수정치세력에게 수용되었다. 엄밀히 말해 뉴라이트가 내놓은 역사적 견해들에 대해서 보수가 처음부터 이를 공유하거나 함께한 것은 아니다. 뉴라이트의 견해를 보수진영이 수용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측면은 현대사보다는 근대사 측면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 하지만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나타나는 현재의 보수 정당사에 있어서 신한국당의 역사인식과 현재의 뉴라이트의 현대사 인식은 사실 큰 간극을 보인다. 즉 뉴라이트는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독립변수에 의해 도출되었다고 보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이러한 뉴라이트의 지식인 가운데 핵심 인물 중 하나는 이영훈 교수다.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유명해졌으며, 위안부에 대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위안부에 대한 논란은 분명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분명 단단한 경제사학적 기반위에 놓여 있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이영훈 교수의 해방전후사의 대한 인식이 사실 그대로 도출되는 것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해방전후의 재인식』을 두고 강의노트로 작성한 『대한민국 이야기』가 보다 더 그의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분명히 민족을 상대화하고 해체하는 것이 한국 역사의 함의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개인이 한국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 주역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민족주의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근대주의적 시각은 필자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의 방법론은 일관성이 떨어진다. 이승만 정부 당시 제 2국민병으로 굶어죽은 사람들도 분명 ‘개인’이지만 이러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이승만 정부의 과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만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그러면서 ‘나라 세우기’라는 측면에서 이승만 정부를 해석한다.
‘나라 세우기’는 영어로 엄밀히 번역하면 Building Nation이다. 이영훈 교수는 Nation과 State라는 측면을 약간 혼동하는 측면으로도 보이는데, 그가 언급하는 ‘나라’는 State나 Goverment가 아니라 분명 Nation에 있다. 그러한 ‘나라 세우기’ 과정에 있어서 희생된 개인은 이영훈 교수의 역사인식에서 주역으로서 개인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살아남은 필부만 역사의 주요 인식대상으로서의 개인으로 남기며 그 과정에서 희생된 개인은 깨끗이 지워버린다. 엄밀히 말하면 희생양으로 처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만약 역사의 이해에 있어서 이렇게 개인이 불균형하게 인식되고 의미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이미 역사인식의 일관성을 상실한 것과 다름 없다.
게다가 이러한 ‘나라세우기’ 과정은 4.19와 5.16을 통해 지속성을 상실했고, 그 의미를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의 해석은 이러한 ‘나라 세우기’에 연속적인 역사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른바 ‘역사 세우기’라는 말로 이승만 정부에게 역사적 의미의 당위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황으로서의 역사적 당위이다. 여기에는 연속성이 개입되지 않지만 이영훈 교수는 개화기 이래의 문명개화파를 이으며 이승만을 주요 대리인으로 하는 ‘나라 세우기’라는 당위로서 이승만 정부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러한 당위 자체가 4.19와 5.16 이후에도 더 이상 연속될 수 없다. 게다가 이러한 나라 세우기 과정은 보다 더 큰 보편 당위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 앞에 선행할 수 있다는 설명을 발췌 개헌과 같은 정치파동에 있어서 부여하기까지 한다. 『대한민국 이야기』는 역사적 의미에서 윤리로서의 당위를 사실 남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영훈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위안부에 대한 세밀한 고찰은 사실 동의를 많이 하고 있으며 또한 고민을 더 해야할 부분이다. 즉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한반도의 개개인이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근대적 사회 구조가 이식되었다는 설명은 인정한다. 즉 식민지 근대화론에 조선인이 상당히 배제되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 시기를 거치면서 식민지 근대화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가지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일제 식민지 당시는 일본 정치로 눈을 돌리면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쇼와 태평양전쟁기가 교차한 시기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통치 역시 이 두 시기가 전혀 다른데 엄밀히 말하면 식민지 근대화는 이 두 시기를 거쳐 이뤄졌지만 태평양 전쟁 당시에 있었던 한반도 식민지 정책은 지나치게 압제적이었으며, 심각한 수준의 경제적 수탈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이영훈 교수는 이러한 설명을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유용성 마저도 훼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 식민지근대화론은 의미가 이는 논리이지만 그것을 단순화하여 역사의 보편적 설명으로 적용하는 것은 분명 위험하고 단선론적인 논리이다. 그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로서 제시된 근대화맹아론과도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자신이 국가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는 국가주의자적 명제를 내세운 적은 없다. 그러나 그는 민족을 해체하면서 개인과 개인으로 구성되는 사회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영역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올려놨다. 민족이라는 개념의 대안을 찾았지만 그는 Nation이라는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근대 국가 안에서 머무른 것이다. 즉 여전히 Nation 안에 있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국가주의자이기를 거부했지만 Naiton을 벗어나지 못한 채 민족을 배제하다 보니 결국 국가 외에는 내세울 수 있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대한민국 만들기』는 그러한 부분이 정말 여럿에서 나타난다.
필자의 개인적 선호는 사실 뉴라이트의 문제의식이 한국 사회의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 생각한다. 이 부분은 이영훈 교수에게도 똑같이 해당한다. 그러나 최소한 이영훈 교수의 방법론은 사회과학을 차용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그 방법론은 사회과학 방법론의 여러가지 차원을 왜곡하고 있다. 이는 의도이거나 혹은 사회과학적 방법론의 미비로 보인다.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한다면 변수와 변수의 관계가 맥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논리나 그렇지 않다면 구성적 관념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영훈의 역사적 설명은 많은 부분 사회과학적 개념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일단 뉴라이트 전체의 학자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영훈 교수의 저술에 해당한다.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는 사실 경제사의 챕터에서 만큼은 강력한 설명력을 가진다. 이는 부정할 수 없으며 이영훈 교수가 경제학적으로 쌓아올린 내공이 정말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 외 부분에서 그는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이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분명 자기 자신이 사회과학적인 역사 읽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그것을 완수하지는 못했다. 그가 가지던 이른바 ‘일제의 수탈 신화’와 ‘정신대=위안부 신화’를 해체한 것은 놀라운 학문적 성과라 할 수 있지만 그의 설명은 여전히 완벽하지도, 정밀하지도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이야기』는 뉴라이트가 어떠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모든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유사하거나 혹은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여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려 하는 지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가지는 국가주의적 한계에 왜 빠지게 되는지도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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