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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단상

'강신주' 현상에 대한 늦고 의미 없는 생각

Fulton 2014. 2. 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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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에 대해서는 사실 별 생각이 없다. 한국같이 문화컨텐츠가 열악한 국가에서, 대중성을 갖춘 문화컨텐츠를 제시해 줄 수 있다면 환영을 받고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다. 일종의 강신주 현상은 ‘즐길 거리’가 빈약한 한국에서 적당한 품격과, 적당한 엔터테인먼트를 갖춘 ‘즐길 거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신주의 강연은 충분히 즐길거리가 되고 대중의 열광을 받는 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무시일수도 있지만, 강신주 현상에 대해 굳이 이렇다 저렇다 비판 하는 것 보다는 다른 것이 결여되어서 강신주가 환영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보기에는 온당해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문화컨텐츠라는 것은 창출도 유지도 쉽지 않다. 케이팝과 영화, 게임 외에 이제서야 뮤지컬이 빛을 보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게다가 이른바 ‘교양있는’ 문화컨텐츠의 향유에 대한 욕구는 대중이 창출된 근대 이후로는 누구도 다 가지고 있는 욕구이기에 강신주 신드롬은 사실 새로운 것도 그리 독창적인 것도 아니다. 황수관도 그랬고, 도올도 그리하였으며 가까운 시절에는 김정운이 있었다. 물론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학자적 배경에서 출발한 문화컨텐츠라면 아카데믹한 차원에서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곧잘 한다. 쉽게 말하자면 시도는 나쁘지 않지만  그 시도에 대한 검증과 책임은 따른다는 것이다.


다만 그 현상에 대해서 지나치 ‘강신주’와 ‘인문학’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중들과 미디어의 폭발적 관심이 다른 대안이 없어서 일어난 현상이라면, 그 현상의 내적 속성보다는 외적 배경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강신주’, ‘인문학’, ‘철학’ 만 바라본다면, 정작 다른 강신주 현상이 드러났을 때 그 때도 그 때에 해당하는 내적 속성만 언급될 뿐이다. 이는 사실 동어반복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대중은 ‘교양 있는’ 여가와 ‘즐길 거리’가 필요할 뿐이고 거기에 강신주라는 컨텐츠가 부합한 것이라고 본다. 딱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즐길 거리’란 효용이 다하면 용도를 다할 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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