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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Korean Politics

왜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가

Fulton 2015. 9. 2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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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건대에서 만난 나의 오랜 지인 하나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난 그 질문에 대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다음과 같이 답을 하였다.
“나는 원론적으로 국정화에 대해서는 전면 반대를 하고 있고 역사교과서에 있어서는 검정제도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역시나’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이른바 일국사라는 것이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따라서 일국사 교육은 국가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교육하고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화를 하는 과정이라는 기능적인 부분에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기능의 유효성은 이해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역사에 대해서는 EH카의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관점에 동의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서술은 다원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만이 다른 맥락은 탈각되고 오로지 국가에 의한, 국가의 역사만 남아 다른 관점의 역사는 ‘진실’이 아니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류쿠의 역사와 오키나와 병합을 다루는 일본사를 보기만 해도 이는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최소한 그것이 국가에 의한 필요에 의하더라 하더라도 이것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통해서 이뤄지면 안된다. 그것은 교안 강화와 사범교육을 통해서 이뤄져야 할 일이지 국가가 쓰는 독점적인 공적인 역사는 결국 내셔널리즘의 독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왜 그리 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의 극우들은 역사교과서 다시쓰기에 주목했던가. 이른바 '제대로 된 역사'를 말하는 것은 츠쿠루카이(새로운 역사를 쓰는 모임)도 하는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대로 된 역사는 일원화된 텍스트로는 불가능하다. 이는 오로지 타자화를 통해 진행될 수밖에 없고, 이는 궁극적으로 역사에 대한 국가의 권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교육 수요자 입장에서 국정교과서는 충분히 편의성이 있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배우는 입장에서 단일 교과서는 편한 일이다. 게다가 입시교육이 중심인 한국에서 단일 국정교과서는 정말 수요자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편한 일이다. 수요자 입장에서 텍스트가 하나라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부작용을 각오해야 한다. 한창 때 일어난 인조이제팬에서 벌어진 청산리 대첩 논쟁을 알고 있는가? 이 논쟁에서 한국의 이른바 역덕들은 일본 측 논객들의 기존의 한국사 서술에 대한 반박과 더불어, 일본 측 사료에 대해서 반박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해 이 논쟁이 역사학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제공했는 지에 대해서는 강조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른바 역사교과서에 의존한 역사가 얼마나 덧없는지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각주:1] 논쟁 없이 그저 제공되는 역사교과서에 의한 교육은 굉장히 기반이 약한 부실공사로 지어진 역사일 개연성이 크다. 왜 그러한 설명과 기술이 맞는 지에 대해 생각하고 논의되어야 만이 역사로서 가능하다. 수학적 논리 없는 수학이 가능한가? 원래 참인 명제는 왜 대우명제가 참인지에 대해 설명없이 외우는 수학이 과연 수학인가? 이것은 역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

이른바 ‘환빠’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초기에 ‘환독’에 대한 비판은 지금과 같이 아주 정교한 정도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것이 기존의 고대사(상고사)를 대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논쟁과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환독에 대한 비판은 점차 정교해졌고, 환독에 대한 반박할 수 있는 서술도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본래 역사에 대한 해석과 서술은 이렇게 변증법적인 과정을 거치며 점차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일한 국정교과서에 의한 역사가 이러한 논쟁과 토론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에 대해 굉장히 의아하다. 이것이 과연 수요자 중심이라는 시각에서 생각해볼 때 과연 옳은가?


베트남 전쟁 당시에 있었던 하미 학살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군에 의한 사살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군의 입장에서는 민간인 속에 섞여 있던 게릴라의 문제로서 이를 바라볼 수 밖에 없고, 학살 현장에 있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지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엄밀히 말하면 둘의 시각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 진실에 대한 시각은 다양할 수 있고 이러한 시각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정합한지에 대해서는 토론과 논쟁, 사료와 유물해석이 해결해줄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역사 교육은 지금도 사실 수요자 중심으로 배려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의 입시에서 역사과목의 시험은 애당초 정치적, 역사적 논쟁이 있는 부분에서 출제는 최대한 회피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정교과서의 도입은 이러한 배려도 결국 국가 본위의 시각만을 ‘강요’할 개연이 커지게 할 것이다. 이게 과연 수요자 중심에서 도입을 한다라고 할 수 있는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다만 거기에서 우리가 말하는 역사가 과연 그것을 ‘역사’라 부를 수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싶다. 의심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는 역사도 역사라면 성경에 쓰여진 창세기부터 출애굽기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요한복음은 최소한 역사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맞다. 우리는 근대를 살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 이 논쟁이 현재는 진행되고 있지 않지만 여전히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 논쟁의 가치는 사료비판이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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