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한번만 딱 보고 덮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 이유 없이도, 혹은 읽어야겠다고 느끼면 언제든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다시 보는 책이 딱 두 권 있다. 한 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고 한 권은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이다. 두 권 모두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며, 현실 정치와 이상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지, 당위 추구와 고전적인 분석으로 이뤄진 책이다.
두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한탄이 아닌 realpolitik를 어떻게 분석적 영역으로 설명하고 구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다. 두 권 모두 시간을 앞서간 최고의 고전들이지만, 이 책만으로 realpolitik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무리이다. 나는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과거와 현재의 ‘현실’사이의 어떠한 공통적인 ‘맥락’이 존재하는 지 갈구할 뿐이다.
현실정치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나는 ‘한심함’이나 ‘개탄’이 아니다. 그것을 ‘한심함’이나 ‘개탄’으로 덮어버린다면 이 공동체와 공동체 내부의 행위자인 나라는 개인이 무슨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완전히 은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한심함’, ‘개탄’, ‘무력감’을 주는 사건과 현상이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발생하고, ‘한심함’과 ‘개탄’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시 현실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 지 보다 더 엄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그것이 내 주된 관심 주제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분석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이론을 통해 모델을 만들 수도 있고, 전망이론을 통하여 개개인 행위자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국가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설명할 수도 있으며, 한국 사회 전반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해석을 통해 접근할 수도 있다. 또는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어떠한 요소를 질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언제나 중요한 것은 ‘한심함’과 ‘개탄’으로 그냥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규명해야 한다. 설령 ‘한심함’과 ‘개탄’의 원인이 되는 현상을 뜯어 고치려 하더라도 만약 문제가 규명이 잘못된다면 그것은 오진에 의한 수술이나 치료를 시도하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너무 느리다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규명을 하기에 아무 맥락 없이, 대부분의 사회적 논의는 의회에서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는 뻘소리도 나오는 것이고, 인물 중심의 정치를 무조건 척결하자는 이야기나 나오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진단’이지 당장의 ‘수술’이 아니다. 물론 ‘진단’을 제대로 내리고 ‘수술’을 할 수 있게 필요한 ‘응급조치’라면 그것은 이뤄져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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