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합의의 당사자들은 누구도 조약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법학을 하시는 분들이 모두 조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단지 조약적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외교적 협상/협의/교섭의 결과를 조약이라 하지 않는다. 본래 조약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외교부 사이트에 가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1
“조약”이라 함은 “단일의 문서 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관련 문서에 구현되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또한 그 특정의 명칭에 관계없이, 서면 형식으로 국가간에 체결되며, 또한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를 말합니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조 참조) 그러나, 상기 정의는 편의상 국가간의 조약만을 대상으로 규율하고 있는 비엔나협약상의 정의입니다. 동 정의가 국가와 국제기구 또는 국제기구간 등의 국제적 합의를 조약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조약에 관한 내용을 규율하기 위한 다자협약으로 “국가와 국제기구간 또는 국제기구 상호간의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이 있습니다.(1986년 채택, 현재 미발효).
조약의 유형과 명칭
ⓐ조약 (Treaty)
가장 격식을 따지는 정식의 문서로서 주로 당사국간의 정치적, 외교적 기본관계나 지위에 관한 포괄적인 합의를 기록하는데 사용됨.이 형태의 조약으로는 평화, 동맹, 중립, 우호, 방위, 영토조약 등이 있으며 대개 국회의 비준동의를 요함. 체결주체는 주로 국가임
헌장 (Charter, Constitution), 규정(Statute) 또는 규약(Covenant)
주로 국제기구를 구성하거나 특정제도를 규율하는 국제적 합의에 사용됨.협정 (Agreement)
주로 정치적인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전문적, 기술적인 주제를 다룸으로써 조정하기가 어렵지 아니한 사안에 대한 합의에 많이 사용됨. (체결주체는 주로 정부임)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양자조약 형태로서 그 예로는 투자보장협정(Investment Protection Agreement), 무역협정(Trade Agreement), 문화협정(Cultural Agreement) 등이 있음.ⓑ협약 (Convention)
양자조약의 경우 특정분야 또는 기술적인 사항에 관한 입법적 성격의 합의에 많이 사용되며 예컨대, "조약협약"의 경우와 같이 특정분야를 정의하고 상술하는데 사용됨. (체결주체는 주로 국가임) 국제기구의 주관하에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체결되는 조약의 경우에도 흔히 사용됨.의정서(Protocol)
"의정서"라는 명칭은 기본적인 문서에 대한 개정이나 보충적인 성격을 띠는 조약에 주로 사용되나, 최근에는 전문적인 성격의 다자조약에도 많이 사용됨.ⓒ각서교환(Exchange of Notes)
전통적인 조약이 동일서면에 체약국의 대표가 서명함으로써 체결하는데 비하여 각서교환은 일국의 대표가 그 국가의 의사를 표시한 각서(Proposing Note)를 타방국가의 대표에 전달하면, 타방국가의 대표는 그 회답각서(Reply Note)에 전달받은 각서의 전부 또는 중요한 부분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동의를 표시하여 합의를 성립시키는 형태 주로 기술적 성격의 사항과 관련된 경우에 많이 사용되며 조약체결절차를 간소화함으로써 긴급한 행정수용에 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우리의 경우에는 사증협정 또는 차관공여협정 등에 많이 사용함.ⓓ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합의각서(Memorandum of Agreement)" 및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는 이미 합의된 내용 또는 조약 본문에 사용된 용어의 개념들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당사자간 외교교섭의 결과 상호 양해된 사항을 확인, 기록하는데 주로 사용되나, 최근에는 독자적인 전문적·기술적 내용의 합의 사항에도 많이 사용됨.상기 이외에도 약정(Arrangement), 합의의사록(Agreed Minutes), 잠정약정(Provisional Agreement, Modus Vivendi), 의정서(Act), 최종의정서(Final Act), 일반의정서(General Act) 등의 각종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바, 동 형태 또는 용어의 사용은 국제관행상의 차이로서 이들은 명칭에 관계없이 그 내용상 조약법 협약의 양국간 합의를 구성하는 넓은 범주의 조약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조약으로서 동등한 효력을 가짐.
위의 조약의 유형들의 요건은 국제법적인 법적근거를 가지는 문서를 반드시 양국 합의하에 남겨야 한다. 위안부에 대한 한국와 일본의 합의는 어디까지는 “공동기자선언문”일 뿐이고 이러한 형태의 조약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조약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헌법에서의 조약이라는 것의 규정이 단순히 조약이라는 형태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조약의 유형과 명칭을 모두 포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이지, 이러한 형태의 공동의 합의의 문서도 남아 있지 않은 ‘정치적 합의’를 조약으로 보기 위함은 아니다.
2. 이 합의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쪽의 정치엘리트는 모두 국내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민족주의적 동원을 선택할 개연성이 크며, 특히 ‘구보타 망언’ 이후 일본의 역사문제의 정치의 패턴을 생각해봤을 때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부정하는 발언이 나올 개연이 크다. 만약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공동선언문에 걸려 있는 상호 조건적인 ‘최종성’과 ‘불가역성’은 그 자체로 무너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도쿄대 교수인 기미야 다다시이다.
“이번 합의를 허사로 만들어버리는 ‘망언’이 속출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일본 측에서는 특히 정치인이 부주의한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 2
만약 일본이 먼저 깬다면, 우리는 이러한 책임을 일본에 떠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의 여론은 우리가 이 합의를 역행하기를 원하는 시각이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랬을 때의 역사문제의 책임에 대해서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책임이지만 국제적 합의를 깬 책임은 우리가 져야할 가능성이 크다. 분명 일본의 국내정치적 특성 상 이 합의와는 다른 역사적 내러티브가 선거나 혹은 국내정치적 과정에서 등장할 가능성이 크고 그것을 우리가 이용할 가치가 있다면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게 국제정치에서의 외교이고, 현실적인 접근이다.
이 합의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처럼 보이지만 합의문이 상호교차적으로 모호하며, 상호 합의에 의한 행동이 구체적으로 ‘진술’되어 있지 않다. 3부에서 말했다시피 이 합의의 목적은 결빙이고, 이 결빙은 솔직히 매우 임시적인 결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발표한 고노 담화도 부정하려 했던 것이 현재의 일본정부였고 미래의 일본정부는 이러한 합의에 대한 이행을 거부하고 싶은 유혹에 계속 빠지게 될 것이고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랬을 때 위안부 문제는 다시 한번 역사문제의 정치 한복판으로 소환될 것이다.
3.
10억엔의 문제는 한국정부가 국민감정을 지나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어떻게든 배상하는 형태로 진행되게 되었고, 이는
국제적인 전례로서 작동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한국의 외교부가 일본에게 경제적인 배상을 요구한 것은
단순히 액수가 아니라 앞으로 한국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다른 국가와의 경제적 배상을 지향해서 요구한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그러기에는 10억엔은 한국의 국민들이 납득하기에는 분명 푼돈인 것은 사실이다. 한국 외교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협상에서 돈 문제로 구질구질하게 나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교부 입장이지 이러한 문제를 받아들이는 위안부 문제의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로 보인다.
4. 예전에도 얘기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합의를 하려고 했으면, 이명박 정부 때 일본 민주당 정부와 어떻게든 합의를 했어야 한다고 본다. 엄밀히 말하면 그때에 한국과 일본은 역사문제의 해결 요구하라는 국제구조적인 압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한국의 입장에서는 보다 더 전진한 조건을 받고 싶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일본정부는 역사문제의 합의의 압박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고,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때보다 더 후퇴한 ‘공동선언문’을 들어야 했다. 일본 민주당 정부의 안이었던 사사에 안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 썼던 반성/화해/합의의 선택에서 한국은 결국 여태까지 ‘반성’을 문제의 해결로 견지해왔고 일본은 ‘방치’를 선택해왔다. 한번 더 생각해본다면 한국정부가 국가자율성을 더 발휘할 여지가 있고, 국제환경이 보다 긍정적일 때 화해 혹은 합의의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He Yinan의 The Search For Reconciliation을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독일’의 롤모델을 따르라고 촉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과를 받고 독일과의 역사적 화해를 하기 위해 폴란드는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정치는 ‘도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권력’이라는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한국정부가 ‘도의’를 강조한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의 기본적인 원리를 한일간의 역사문제에서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최근에는 이러한 반성으로 Jennifer Lind의 Sorry State를 다시 붙잡고 한국어로 조근조근 옮겨보고 있다. 사실 이 책의 결론은 저자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너무 실망스러운 결론이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무엇을 간과해 왔는지 역설해주기에 붙잡아 보고 있다.
관심이 있으면 꼭 읽어보세요.
5. 한국정부가 이번에 한 가장 큰 실수는 협상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 분들과의 어떤 식으로든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대협 등, 위안부 단체의 문제가 있던 것도 사실이지만 배상의 문제에 있어서 문제의 당사자들이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합의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던지 문제의 대상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은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의 협상 참가자로서의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정부가 진심으로 위안부 문제의 대상자인 할머님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역사문제의 해결이 이렇게 어렵다. 사실 한국인의 많은 수는 독일의 경우를 보고 저렇게 해야 한다 말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다룬 역사문제의 국제정치를 살펴보면 독일의 경우가 사실 매우 예외적이다. 더 나아가 말하면 독일 같은 ‘대인배’가 참 없다. 내가 이 분야를 연구주제로 삼고 모니터링하면서 느낀 것은 이 문제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윤리도덕과 현실이 괴리된 문제도 드물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념변수가 국제정치에서 지배적인 변수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변수가 국가관계에 개입할 때 이러한 문제는 물질적인 문제(군사, 경제)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굉장히 복잡해진다. 엄밀히 말해 역사문제의 정치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관련 주제가 ‘역사’이지, 그것이 역사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르메니아 학살 현장
진지하게 한일관계 혹은 한국이 관련된 역사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면 우리는 앞으로 정치적
측면을 보다 더 고려해야 보다 더 현명한 해결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과 같은 ‘대인배’ 국가의 양상이 보다 보편적인 양상이 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도
한국인도 독일과 유사한 문제의 성격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대범하게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책임이 있는 문제에서 ‘도의’를 말하지 않는데, 타자에게 ‘도의’를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모순이며, 현실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정치’가 중요하다 해서 우리가 ‘도의’를 망각해서도 안되며, 그렇다고
‘도의’만으로 국제정치의 행위자가 되는 순진함을 벌여서도
안될 것이다.
이것으로 글을 마친다. 여러 아쉬움이 남지만 내가 연구 작업을 수행한 바운더리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쓴 글이었다. 이것으로 한동안 이 합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좀 더 관련 자료가 모이고 데이터가 누적되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피해자인 할머니들에게 정부가 협상의 행위자로 나선 이상 책임감을 꼭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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