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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Politics of Identitiy

왜 인식공동체는 한일관계를 개선하지 못했는가?: 한국일보의 "창간 70주년 기획 : 한일 맞서다 마주 서다"의 기사에 대한 비판

Fulton 2024. 8. 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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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기억의 정치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리서치를 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나는 양국 간의 역사 인식 차이, 과거사 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 동학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나는 한일 양국의 학자, 정책 결정자, 그리고 여론 주도층으로 구성된 소위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ies)의 역할과 한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인식공동체(epistemic communities)는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 네트워크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행위자로 간주된다(Haas 1992). 한일관계에서도 양국의 학자, 전문가, 관료들로 구성된 인식공동체가 존재해왔고, 이들이 양국 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인식공동체가 국가 간 관계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인식공동체의 전문성이 곧 정책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할 만하다. 다만 이것은 국가이익이나 역사적 갈등과 같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Miller 2001).

 

인식공동체가 한일관계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인식공동체의 영향력 한계이다. 둘째, 국내정치적 동학의 복잡성이다.

 

실제로 한일 간에는 인식공동체의 활동이 있어왔다. 대표적인 예로 한일 역사교과서 대화와 역사교육 포럼을 들 수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양국 역사학자들이 참여하여 공동 연구를 진행했고, 2005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보고서를 발간했다. 또한, 2007년부터는 한일 역사교육자 포럼이 개최되어 양국의 역사교육 전문가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교환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연구 결과의 제한적 활용: 공동연구의 결과가 실제 교과서 편찬이나 정책 결정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2. 정치적 개입: 역사 문제가 정치화되면서 학술적 합의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무력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3. 대중적 공감대 형성 실패: 전문가들의 합의가 일반 대중의 인식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4. 지속성의 부족: 정권 변화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대화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못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인식공동체가 한일관계 개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인식공동체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인식공동체가 제공하는 전문성과 지식이 자동으로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인식공동체와 정책 결정 사이에는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Stone 2019).

 

최근 한국일보의 기사는 독일의 전후 외교 정책, 특히 프랑스, 폴란드 등과의 관계 개선 사례를 한일 관계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 기사는 시민 교류와 학생 교류의 중요성, 안보 협력의 가능성 등을 강조하며 인식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에는 몇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

우리가 정말 이것을 안했다고 생각하는가????

 

첫째, 역사적 맥락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폴란드의 관계 개선 과정은 냉전이라는 특수한 국제 정세 속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한일 관계는 냉전 이후의 동아시아 지역 질서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맥락의 차이는 동일한 접근법의 적용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인식공동체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한일 양국 간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민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치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인식공동체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정치적 의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독일의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 지도자들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였다. 그러나 한일 관계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상황이다.

넷째, 구조적 갈등 요인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다. 한일 관계의 갈등은 단순히 역사 인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패권 경쟁, 경제적 이해관계 등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다. 인식공동체만으로는 이러한 구조적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

다섯째, 안보 협력의 한계를 간과하고 있다. '바이마르 삼각동맹'을 예로 들며 안보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한일 간의 안보 협력이 가진 복잡성과 한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여섯째,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문화적 차이, 특히 역사 인식과 관련된 문화적 차이는 같은 방식의 해결책이 양 지역에서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인식공동체의 내부 갈등을 간과하고 있다. 인식공동체를 단일한 집단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식공동체 내부에도 다양한 견해와 갈등이 존재한다.

 

더불어, 이 기사는 인식공동체의 제한된 성과를 인식공동체 그 자체가 국가 관계를 개선한다는 일반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인과관계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공동체의 활동과 국가 간 관계 개선 사이에는 복잡한 매개 요인들이 존재하며, 단순히 인식공동체의 존재나 활동만으로 국가 관계가 개선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각이다.

 

또한, 유럽의 사례를 직관적으로 아시아의 문제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유럽과 아시아는 역사적, 문화적, 지정학적 맥락이 크게 다르다. 유럽에서 성공적이었던 접근법이 아시아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 EU라는 초국가적 기구를 통한 통합의 경험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그에 상응하는 기구나 경험이 없다. 또한, 역사 인식의 문제나 민족주의의 성격도 두 지역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식공동체의 역할과 효과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고 맥락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인식공동체가 국가 간 관계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은 인정하되, 그것이 자동적으로 또는 독립적으로 관계 개선을 이끌어낸다고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신, 인식공동체의 활동이 어떤 조건에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국가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인식공동체와 국가 간 관계 개선의 문제는 단순히 '전문성'과 '지식 공유'의 문제가 아니라, 더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피터 하스(Peter Haas)나 엠마뉴엘 아들러(Emanuel Adler)와 같은 학자들이 주장했던 인식공동체의 영향력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현실에서는 제한적으로만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는 인식공동체의 역할을 과대평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향후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식공동체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그들의 전문성을 정책 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시에 국내정치적 동학과 대중의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Adler, E., & Haas, P. M. (1992). Conclusion: Epistemic communities, world order, and the creation of a reflective research program. International Organization, 46(1), 367-390.

Haas, P. M. (1992). Introduction: Epistemic communities and international policy coordination. International Organization, 46(1), 1-35.

Miller, G. J. (2001). Why is trust necessary in organizations? The moral hazard of profit maximization. In K. S. Cook (Ed.), Trust in Society (pp. 307-331). Russell Sage Foundation.

Stone, D. (2019). Making global policy. Cambridge University Press.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05223100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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