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전주 이야기

-1- 전주의 공간 : 신시가지의 욕망, 욕망의 신시가지

Fulton 2020. 12. 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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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본위를 세우지 않고 사례부터 쓰는 것을 본래 선호하지 않지만, 이 주제로 사례를 채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논의의 본위가 잡힐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다뤄야할 사례는 전주의 신시가지이다. 이 사례를 고른 이유는 일단 전주의 변화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고,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면서 실망하면서 돌아가는 곳이기도 때문이다.

 

그 실망의 이유는 대개 간결하다. 이곳이 다른 도시들과 다른 게 무엇일까 하는 그런 이유이다. 다만 전주 사람에게는 이곳이 굉장히 이질적인 곳인데. 이러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전주에는 사실 이런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짚자면 과거의 시내역할을 하던 관통로와 유사한 공간은 광주의 금남로나 대전의 은행동이지 서울이나 신도시들의 그런 풍경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다른 이유 하나는 전주에서 계획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중리나 서신동이 있지 않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지만 아중리나 서신동은 계획적인 배드타운이고 기본적으로 이른바 번화가는 거세되어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오로지 신시가지에 한정된다.

 

신시가지의 과거에 대해 묘사하자면, 이 동네는 그냥 논밭과 미나리꽝 그자체였다. 그 논밭과 미나리꽝 사이의 언덕에 고등학교들이 터덜터덜 널부러져 있었고, 전주시의 고딩들은 자주 오지도 않는 시내버스에 갇혀서 학교를 다녔다. 나 역시도 그 중에 하나였고, 내가 아는 바로는 최근에 잘 나가는 ㄱㅇㅂ이라는 배우도 이렇게 학교를 다녔으며, ㅇㄱㅅ이라는 배우도 이렇게 학교들을 다녔었다. 그나마 이 동네가 이 동네의 모습을 보이게 된게 내 기억으로는 2008-9년부터이고 지금의 모습처럼 된것도 2015년 정도의 결과이다. 그전에는 그냥 정말 논밭-미나리꽝의 연속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동교를 넘어서부터는 원래는 정확하게 다 벌판이었고 이동교 넘어서 수목토-더샵아파트가 이 동네의 시작으로 기억한다. 삼천을 건너로 래미안 짝퉁 라미안에서부터 서전주중을 거쳐 햇빛찬 아파트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현재의 모습은 2008년 이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토공이 오기로 했던 전주는 토공과 주공이 통폐합되며 연금관리공단이 오는 것으로 바뀌었고, 도청이 전주 구도심에서 여기로 이전하며 이들을 지원하는 회사들과 서비스업들이 들어서며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면서 대전의 유성구와 남구, 그리고 창원의 모습을 많은 부분 본 뜬 형태로 이 동네가 자리잡게 되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체 된것 중에 하나는 북대 앞이었다. 북대 앞은 전북의 모든 1-30대가 모여 노는 곳이었는데 한때 주류 소비가 전국 3위를 찍는 지역이기도 했다. 이 지역을 이른바 새로운 ‘서울 스러움/도시스러움’으로 무장한 신시가지가 대체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북대 앞은 옛날의 영화를 사실 많은 부분 상실한 동네가 되었다. 여기에서 전북의 젊은이들의 선택이 재미있었는데 과거로부터 진행해오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움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경로의존을 버린 선택을 했다는 지점이 이 동네의 사람들이 기대하던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지점이 바로 주목할 지점인데 사실 전주에서 새롭게 대두한 번화가와 유흥거리가 있는 동네는 한옥마을 앞을 비롯해 새롭게 조금 개조된 남문시장 등이 있어왔다. 그러나 전북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곳은 이런 곳들도 아니고 과거로부터의 경로의존성도 아닌 신시가지였다는 점이 재미있는 지점이다. 이러한 번화가의 트렌드 이전은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1-2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이뤄졌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나름 이리 오래된 도시의 번화가가 통째로 기지 이동한 사례는 매우 드물기에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전북 사람들의 욕망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무슨 커맨더 띄워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갑자기 만든 신시가지로 노는 트렌드가 옮긴다는 것은 재미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러한 신시가지의 지향이 대부분의 서울의 프랜차이즈나 모방을 수용하고 있다는 지점이 주요한 특징이고 이것은 관광객들이나 외지인들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외지인들의 이 동네에 대한 실망은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외지인들은 다른 동네로 가는 것을 더 추천드린다. 차라리 한옥마을을 가거나 객리단길 주변을 잘 다녀보던가 남문시장을 훑거나 하시는 편을 추천하고 정말 제대로 돌고 싶다면 중앙시장 주변이나 아님 차라리 북대 주변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굳이 이 동네에서 외지인들에게 여긴 괜찮다고 할만한 데라면 이상하게도 광주분들이 이 집을 선호하는데 ㅂㅇㄷㅅㅂ 이라는 집이 있는데 이곳을 추천한다. 다른 점포보다는 신시가지의 집이 원래의 맛을 잘 내고 있으니, 괜찮다. 굳이 말하자면 비빔밥보다는 이집을 더 추천하는 바이다.

 

다음 글도 전주의 변화를 말해야 하기에 객리단길에 대해서 써 볼 것이다. 왜 객사 주변, 엄밀히말하면 객사주변도 아닌 이 동네가 왜 외지 투자자들에게 선택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가야하고 이곳은 왜 전북 사람들보다 외지인들이 더 찾는 동네가 되었는지를 설명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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