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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야기

-5- 전주의 공간 : 성취의 제한, 제한된 성취로서의 서신동

Fulton 2021. 1. 2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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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동은 전주의 과거의 욕망이었다는 지적이 옳을 것이다. 전주는 사실 도시 계획에서 부도심을 삼천동-효자동 일대(지금의 서도프라자-상산고 주변 일대)로 기획했고 이 지역에 아파트 단지의 확보를 통해서 이른바 구도심과의 별개로의 생활권을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여러가지 문제로 결국 실패했고 이른바 전주의 잠실을 만들려는 계획은 깔끔하게 실패하였다. 이른바 잘 갖춰진 주거지구와 상업지구가 혼재된 부동산 굴리기가 가능하면서 지속가능한 지역 창출의 꿈은 일단은 실패했지만 그것을 다시 굴리게 된 곳이 바로 삼천동과 효자동의 선대칭 지역에 놓여져 있는 서신동이었다.

 

전주의 계획은 이러했다. 삼천동과 효자동의 실패 중 하나는 전주가 자생적인 상업지구를 꾸리는 것에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전주시는 이 지역에 강력한 상업 클러스터 형성을 원했다. 동시에 이 지역에 전주에서 생전 하지 않던 괜찮은 학군 만들기를 기획하였다. 문제는 그것을 고등학교가 아니라 괜찮은 중학교 학군으로 이룩하려 하였다는 점이 특이한 지점이다. 서신동을 본격적으로 개발하던 시점에서는 이미 전주의 인문계 고등학교는 사실상 포화시점이었고 결정적으로 새로운 고등학교를 만든다고 전주고의 헤게모니를 깨트리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했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를 이 지역에 지어서 박아두기 시작했다.

이마트는 정말 전주 상업사에서 반드시 언급되어야 한다.

서신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발이 성공했던 탓은 이마트였다. 98년에 개발이 확정된 이마트는 전주에 너무 큰 파장을 주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전주에 만들어진 이마트가 전주의 모든 상권을 ‘정말’ 잡아 먹었다. 문제는 흔히 아는 대로 시장을 잡아 먹은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전주의 시내 상권의 백화점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IMF 위기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여기에 더해지면서 전주의 상권은 붕괴했지만 등장한 이마트는 전주의 모든 것을 쓸어담아버렸다. 실제로 기존의 전주의 백화점들이 이마트 만큼의 상업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가 이마트가 모두를 쓸어담게 만들었다.

 

이게 외지인들이 보기에는 코미디같지만, 이건 일종의 트라우마적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덕분에 서신동은 정말 잘 굴러가게 되었는데, 전주의 유명한 점포들이 다 서신동의 분점을 만들었다. 전주의 제1서점인 홍지서림부터, 전주에서 그나마 양식 비스무리한 것을 제공한다는 그랑비아또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서신동에 들어섰다. 전주에서 볼 수 없던 맥도날드도 이곳에 들어섰고 정말 전주의 잠실 혹은 목동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 과정에서 롯데백화점도 백제대로에 인접한 좁아터진 지역에 거의 정말 억지로 짓고 들어왔다. 사실 전주의 백화점 다운 백화점이 전멸한 다음에 드디어 백화점의 서비스를 기대했던 터라 전주 사람들의 기대는 컸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롯데백화점이 등장한 이후로 모든 기대가 무너졌는데 입점한 브랜드의 수준과 적은 용적률로 인해 다른 도시의 롯데백화점과 비슷한 수준을 요구하였던 전주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남겨주었다. 특히 이는 서울의 롯데백화점이 아니더라도 다른 광주나 다른 지역의 롯데백화점과 비교만 해봐도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다만 재미있는 지점은 롯데백화점의 완성과 서신동 성장의 정체가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서신동의 성장하던 학원가도 이 때즈음에 정체했고 서신동에 들어서던 분점들도 문을 닫거나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지점이 바로 그 때 즈음이었다. 전주 이마트의 신화는 다른 마트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세는 있었지만 과거의 대체 불가능한 상업지역을 형성하진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하면 이게 이른바 신시가지-에코시티 건설 이전의 전주의 경제능력 한계에 있었다. 대한방직 공장 부지의 개발 떡밥이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사실 이전의 서신동의 발전 동력은 이미 멈췄다. 빠른 시간에 전주와 서신동이 원하는 것을 지어가면서 약간은 주택가와 아파트, 그리고 상업지구가 혼재하는 부분적인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시너지보다는 비용의 증가를 가져왔고, 전주의 목동이나 은행삼거리의 학원가를 만들기에는 전주 고등학교의 강고한 ‘야간 자율학습시스템’은 성장의 한계를 낳았다. 그나마 믿던 것이 상산고의 자립형 사립고 전환이었는데 이것도 상산고의 다니는 ‘전주사람’이 사실상 의미없는 숫자가 되면서 그 전환도 쉽지 않게 되었다.

 

재미있는 지점은 전주의 막걸리집(이라 읽고 유사한정식집이라 쓴다)들이 삼천동에서 쇠락하고 있을 때 전주 사람들을 타겟으로 지어진 서신동의 막걸리골목이 전주의 관광이 슬며시 살아나면서 접근성이 삼천동보다 좋다는 점에서 더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이것도 서신동의 발전과 함께 식당업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만들어진 것들이 전주의 관광이 살아나면서 지속 가능한 막걸리 골목이 되었다. 물론 오리진으로만 따지면야 삼천동이 더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할 수 있지만 ㅇㅊㅁㄱㄹ가 어떻게 보면 만든 서신동의 막걸리 골목도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설명을 하자면 이 때 즈음에 중앙에서 프로젝트를 가져다가 전주-서신동 지역에 투하를 했다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다만 영향력있는 정치인은 ‘덕진구’에 한정적이었고 이 지역은 늘 초선의 자리였다. 그 결과는 국회에서의 영향력의 제한이었고, 이 지역의 동력이 있을 때에 필요했던 정치적인 기획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늘 날의 서신동의 모습은 ‘퇴락’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전주가 생각했던 모습의 제한적인 성취에 멈췄다.

 

사실 서신동에 대해 다른 좋은 글이 있어서 뭔가 그 글이 이룬 성취가 기술하지 못한 파편들을 줍다보니 서신동의 단편적인 모습만 기술한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쓰신 분에게 허락을 얻어 소개할 기회가 있다면 그 글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서신동의 결과는 전주 행정과 전주 시민에게 두 가지 인식을 주었다. 첫째는 전주가 관광도 터지지 않고, 여러 행정적 기획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 발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완전 소비도시로 전환하고 쇠락한 도시가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저발전 문제는 결국 비교우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이클 포터가 언급한 경쟁우위에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기에 서신동을 위시로 하는 지역에서 전주에서 보수 후보가 총선에서 당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는 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만의 동력으로는 결국 제한된 한계만을 가져올 뿐이고, 이른바 창원 모델이건 서울의 모델들을 전주의 도입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에 전주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이마트를 통해 대기업의 ‘위엄’이 뭔지를 보게 하였고 롯데백화점을 통해, 대기업의 한계를 동시에 보게 하였다. 이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전주의 지역기반 상인들에게 굉장히 심한 대기업 중심의 서비스 공급에 대한 혐오를 가져왔고, 이후의 대기업 중심의 전주 개발이 쉽지 않게 하는 일을 가져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전주 시민들에게 과연 유익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이 맥락 자체는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본 이야기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대체 서신동의 이마트와 롯데백화점 이전의 전주의 구도심 상권을 이해해야 그 다음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 이마트가 무엇을 폭격한 것인지, 전주의 욕망의 제한된 결과가 서신동이고 현재 진행형이 신시가지라면 그 욕망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 지  객리단 이전의 객사 주변과 중앙시장 상권이 설명되어야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그곳을 회상하며 이야기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도 언급한 서신동을 바라본 좋은 글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한다. 이 글이 있었기에 이 글이 조금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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