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면 해야겠다고 느끼는 작업 중 하나는 왜 기존의 많은 국제정치와 국제관계, 외교를 다루는 이론들이 실제의 정책현실에서 안맞기 시작했는지를 한번 다뤄보고 싶다. 물론 기존에도 국제관계이론과 외교정책 사이의 괴리가 없거나 미미했던 것은 아니지만, 기존에 작동하던 질서나 관행마저도 무너져 가는 모습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는 기존의 많은 이론들이 기반한 전제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일들과 최근의 많은 국제정치 행위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기존의 전제가 무너졌을 때만 그나마 행위자적 합리성을 설명할 수 있는 현상들이 너무 많았다. 기존의 합리적 행위자가 이제와서 합리성을 상실했다는 행태 결정과정의 논리가 바뀌었다는 것보다, 합리성의 계산을 하게 해주는 기준이 바뀌었다는 설명이 보다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이 처음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벡터가 매번 들쭉 날쭉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국제관계의 행태에서 나타나는 이익의 방향과 종류, 계측이 바뀐 탓이고 이는 가치체계의 어느 정도 전환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런 틀 자체를 구축하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권이 바뀌기 전, 여러 외교행태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이런 소회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생각보다 우리가 알던 그 외교와 국제정치는 지금은 더 이상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정권이 바뀐 지금에 와서는 보다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권이 바뀐 후 새롭게 행위자로 진입한 사람들이 지향하던 과거의 행태로도 전환하는 것에 실패했고 오히려 과거의 행태를 고수해 보려다가 결국 다른 행태를 수긍하게 되는 결과를 계속 반복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대부분의 외교와 국제관계에 영향이 적지 않은 조건에서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발견되고 있는 현상이다.
더 이상 현실주의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현상들이 있지만, 이는 현실주의의 패배, 자유주의나 구성주의의 승리로 설명하기에는 그것도 마뜩치 않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행태가 현실주의의 설명력이 떨어졌다고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와 구성주의의 설명력의 증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존에 있었던 그랜드이론들의 설명력이 모두 쇠락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 오늘 날의 현실이다.
큰 작업을 몇개 하고 나면, 언젠가는 이 작업도 손을 댈 생각이 있다. 그 이전에도 이러한 작업을 약간은 염두에 두면서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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