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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International Politics

트럼프의 NATO 5% 요구: 동맹의 균열과 군사력 강화의 딜레마

Fulton 2025. 6. 5.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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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5일, 브뤼셀 NATO 국방장관 회의장.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던진 한 마디가 70년 역사의 대서양 동맹을 뒤흔들었다. "GDP의 5%를 국방비에 지출하라." 그의 자신만만한 표정과 "거의 합의에 도달했다"는 주장은 회의장 안팎의 당혹감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충격과 혼란: 첫 반응들

회의가 끝난 직후, 각국 국방장관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마치 시속 100km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200km로 가속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 같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NATO 30개 회원국 중 GDP 대비 2%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하는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하다. 폴란드(3.9%), 에스토니아(3.4%), 미국(3.4%), 그리스(3.1%) 등 소수만이 3%를 넘는 상황에서, 5%는 문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더욱이 독일(1.5%), 캐나다(1.3%), 스페인(1.3%), 벨기에(1.1%) 등 주요 회원국들은 아직 2%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5%는 현재 국방비의 3~4배 증액을 의미한다.

분열된 동맹: 각국의 복잡한 셈법

헤그세스의 발표 이후, NATO 회원국들의 반응은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뉘었다.

적극 지지 그룹: 생존의 문제

폴란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가 여기 속한다. 이들에게 러시아는 추상적 위협이 아닌 실존적 공포다.
폴란드의 블라스차크 국방장관은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미 4%에 근접해 있고, 5%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2024년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00문 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격적인 군비 증강을 진행 중이다. 에스토니아의 한 고위 관료는 "우리에게 선택지는 없다. 5%를 쓰거나, 아니면 다시 소련의 일부가 되거나"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구 130만의 소국 에스토니아는 이미 GDP의 3.4%를 국방비에 쓰고 있지만, 러시아와 294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현실은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한다. 핀란드는 2023년 NATO 가입 이후 급속히 국방비를 늘리고 있다. 1,340km에 달하는 러시아와의 국경선, 그리고 1939년 겨울전쟁의 기억은 핀란드인들에게 국방비 증액을 당위로 만든다.

신중한 동조 그룹: 원칙엔 동의하지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이 그룹에 속한다. 헤그세스는 이들을 지지국으로 분류했지만,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독일의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했다. 독일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1,000억 유로 특별 국방기금을 조성했지만, 이는 일회성 조치다. 연간 예산 기준으로 5%를 달성하려면 현재 520억 유로에서 1,950억 유로로 늘려야 한다. 이는 독일 전체 교육 예산(약 1,800억 유로)보다 많은 금액이다. 프랑스는 더욱 미묘한 입장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해왔는데, 미국의 일방적 요구는 이 비전과 충돌한다. 프랑스 국방부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핵전력 유지에 연간 50억 유로 이상을 쓰고 있다. 이것도 NATO 방위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경제 규모는 작지만 1인당 GDP가 높은 나라들이다. 이들에게 5%는 엄청난 절대 금액을 의미한다. 노르웨이의 경우 현재 약 70억 달러의 국방비를 280억 달러로 늘려야 한다.

명확한 반대 그룹: 현실을 직시하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스가 여기 속한다. 이들은 재정 위기의 후유증과 높은 실업률, 사회 복지 수요 등으로 국방비 대폭 증액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페인의 로블레스 국방장관은 가장 직설적이었다. "2%만으로도 우리의 책임을 다할 수 있다. 각국은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페인의 현재 국방비는 GDP의 1.3% 수준. 5%를 달성하려면 현재 130억 유로에서 500억 유로로 늘려야 한다. 이탈리아는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140%를 넘는 상황이다. 크로세토 국방장관은 "우리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리스는 이미 GDP의 3.1%를 국방비에 지출하고 있지만, 이는 터키와의 긴장 관계 때문이지 NATO 공약 때문이 아니다. 포르투갈의 한 외교관은 "우리가 5%를 쓴다면 학교와 병원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애매한 중간 그룹: 시간을 벌다

영국, 캐나다, 덴마크, 벨기에가 이 그룹에 속한다. 이들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하며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영국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헤그세스가 "영국도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했을 때, 영국 측은 "우리는 그곳에 도달할 것(We'll get there)"이라는 모호한 답변만 했다. 브렉시트 이후 경제 침체, NHS 위기, 생활비 상승으로 고통받는 영국에서 국방비를 현재 GDP의 2.1%에서 5%로 늘리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 캐나다는 전통적으로 NATO 국방비 지출 하위권이다. 현재 1.3% 수준에서 5%로 늘리려면 연간 270억 달러에서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 트뤼도 정부는 이미 국내 정치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 추가 부담을 질 여력이 없다.

5% 증액이 가져올 군사적 변화: 장밋빛 전망과 어두운 그림자

긍정적 시나리오: 유럽의 군사 르네상스

만약 모든 NATO 유럽 회원국이 GDP의 5%를 국방비에 지출한다면, 유럽의 군사력은 획기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가장 먼저 나타날 변화는 즉각적인 전투력 향상이다. 현재 많은 유럽 국가들의 군대는 '속 빈 강정' 상태다. 독일 연방군의 경우, 보유한 푸마 장갑차 350대 중 실제 작전 가능한 것은 150대에 불과하다. 유로파이터 전투기 140대 중 절반만 비행 가능하다.
국방비가 5%로 늘어나면 이런 '정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비 부품 구매, 정비 인력 확충, 훈련 시간 증가로 가동률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현재 부족한 탄약 비축량도 NATO 기준(30일 전투 지속 가능)을 충족시킬 수 있다.
첨단 무기체계의 대량 도입도 가능해진다. F-35 전투기의 경우, 현재 유럽 국가들이 주문한 물량은 약 600대지만, 예산이 늘어나면 1,500대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 이는 러시아 공군력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미사일 방어 체제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현재 유럽에는 패트리어트 포대가 약 40개 배치되어 있지만, 이를 150개 이상으로 늘려 촘촘한 방공망을 구축할 수 있다. THAAD 같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제도 도입 가능하다.
병력 확충과 처우 개선도 주요 변화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모병제 전환 후 심각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은 18만 명 정원에 실제 병력은 17만 명, 프랑스는 더 심각해서 목표 대비 2만 명이 부족하다. 국방비 증액으로 군인 급여를 민간 수준으로 올리고, 주거 지원, 자녀 교육 혜택 등을 제공하면 우수 인력 확보가 가능하다. 또한 예비군 훈련도 현재 연 2주에서 2개월로 늘려 실질적인 전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부정적 시나리오: 새로운 문제들의 등장

그러나 급격한 국방비 증액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 먼저 우려되는 것은 방위산업의 거품과 부패다. 미국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펜타곤은 2018년 회계 감사에서 21조 달러의 지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600달러짜리 망치, 1,200달러짜리 커피잔, 10,000달러짜리 변기 시트 등은 방위 예산 낭비의 상징이 됐다. 유럽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갑작스러운 예산 증가는 방산업체들의 가격 담합, 품질 저하, 납기 지연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퇴직 군 고위층과 방산업체의 유착도 심화될 것이다.
민간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심각하다. GDP의 5%는 대부분 국가에서 전체 교육 예산 또는 보건 예산과 맞먹는다. 이 돈이 국방으로 전용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분야가 희생된다. 독일의 경우, 국방비를 5%로 늘리려면 연간 1,430억 유로를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이는 독일이 자랑하는 무상 대학교육(연간 300억 유로), 아동수당(연간 450억 유로), 실업급여(연간 400억 유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새로운 군비 경쟁의 촉발도 우려된다. NATO의 대규모 군비 증강은 러시아와 중국의 맞대응을 유발할 것이다. 러시아는 이미 GDP의 6%를 국방비에 쓰고 있지만, NATO의 5% 목표가 현실화되면 더욱 늘릴 가능성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현재 GDP의 1.7% 수준인 중국 국방비가 3-4%로 늘어나면, 절대 금액으로는 미국을 넘어설 수 있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다.

현실적 시나리오: 창조적 회계와 선택적 이행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창조적 회계'와 '선택적 이행'을 예상한다.

창조적 회계의 기술

이미 많은 나라들이 국방비 계산에 상당한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다. 프랑스는 연간 100억 유로가 넘는 군인 연금을 국방비에 포함시킨다. 이는 순수한 군사 활동과는 거리가 있지만, 군인들의 노후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 미국은 해안경비대 예산 130억 달러를 국방비에 넣는다. 해안경비대가 국토안보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유사시 해군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국가는 UN 평화유지군 분담금도 국방비로 계산한다. 자국 군인이 파병되지 않더라도, 국제 평화 유지에 기여한다는 논리다. 스위스는 민방위 예산을 국방비에 포함시킨다. 핵 대피소 건설, 민간인 대피 훈련 등이 전시 대비라는 명목이다. 국경수비대 예산을 국방비로 분류하는 나라들도 늘고 있다. 불법 이민 단속이 주 업무지만, '국경 방어'라는 군사적 표현을 쓴다.
헤그세스가 언급한 "1.5% 인프라 및 국방 관련 활동"은 이런 창조적 회계의 여지를 더욱 넓힌다. 사이버 보안의 경우, 정부 전체 사이버 보안 예산을 국방비로 분류할 수 있다. 민간 기관 해킹 방어도 '사이버전 대비'로 포장하면 된다. 이중용도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유사시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도로, 철도, 항만은 모두 국방 인프라로 분류 가능하다. 독일의 아우토반이 원래 군사 목적으로 건설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를 정당화한다.
방위 R&D 영역은 더욱 모호하다. 민간 기업의 군사 관련 연구개발비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반도체, AI, 양자컴퓨터 연구는 모두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국방비에 넣을 수 있다. 전략 물자 비축도 빼놓을 수 없다. 석유, 희토류, 반도체 소재 등의 비축은 경제 안보 차원이지만, '전시 대비'로 해석하면 국방비가 된다. 우주 프로그램은 가장 논란이 될 영역이다. 군사적 활용 가능성이 있는 모든 우주 관련 예산을 포함시킨다면, ESA(유럽우주국) 예산의 상당 부분도 국방비로 계산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실제 '하드' 국방비는 GDP의 3% 수준이어도 서류상으로는 5%를 달성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회계 조작이 실질적인 방위력 증강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선택적 이행의 정치학

각국은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실제로 5% 달성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위협이 실존적이고, 국민들도 이를 지지한다. 폴란드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2%가 국방비 증액을 지지한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이 수치가 81%에 달한다. 이들 국가에서 국방비 증액은 정치적 자산이지 부담이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3.5-4% 선에서 타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군사비는 3% 수준으로 늘리고, 나머지는 앞서 언급한 '창조적 회계'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 독일은 이미 이중용도 인프라, 사이버 보안, 민간 방위 R&D를 국방비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평화유지 활동, 핵 에너지 안전 관리 등을 국방비로 분류하려 한다.
남유럽 국가들은 2.5-3%를 목표로 점진적 증액을 추진하며 시간을 벌 것이다. 이들은 EU 차원의 공동 방위 기금 조성, 방위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재정 부담을 분산시키려 할 것이다. 이탈리아는 이미 EU 방위 기금에서 자국 국방 프로젝트 자금을 조달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스페인은 EU 국경 관리 예산을 자국 국방비로 전용하려 한다.
영국은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활용해 예외를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핵전력 보유국이라는 점, 정보 분야 기여, 태평양 지역 관여 등을 강조하며 4% 수준에서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은 이미 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력) 참여, 인도-태평양 함대 파견 등을 국방 기여로 계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진짜 의도

협상 전술로서의 극단적 요구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극단적인 요구로 시작해서 상대방을 당황시킨 후, 실제 목표인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한 미 국무부 전직 관리는 "트럼프 팀의 실제 목표는 3-3.5%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5%를 요구해서 3%를 얻으면 성공이고, 유럽은 안도할 것이다. 전형적인 윈-윈 전략이다."
이는 트럼프의 첫 임기 때도 나타난 패턴이다. 당시 그는 NATO 탈퇴를 위협하며 2% 목표 달성을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국가가 국방비를 늘렸고,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성과로 홍보했다. 이번에도 같은 시나리오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의 구현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변화를 반영한다. 헤그세스의 발언을 다시 들어보자. "미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의 부담을 줄이려 한다.
"이제 유럽이 나설 때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은 GDP 규모로 미국과 맞먹는 경제력을 가졌음에도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도-태평양으로 적절히 전환해야 한다"는 발언은 미국의 새로운 지정학적 우선순위를 명확히 보여준다.
헤그세스가 우크라이나 관련 회의를 건너뛴 것도 상징적이다. 미국은 유럽의 문제는 유럽이 주도적으로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영국과 독일이 주도하도록 했다"는 그의 설명은 미국이 유럽에서 한 발 물러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방위산업 로비의 영향

미국 방위산업계의 이익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 국방비가 늘어나면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 방산업체들이다. F-35 전투기를 생산하는 록히드 마틴,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레이시온, 에이브럼스 전차의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은 유럽 시장 확대를 간절히 원한다.
실제로 유럽의 국방비 1% 증가는 미국 방산업체에 연간 500억 달러 이상의 추가 매출을 의미한다. 5%까지 늘어난다면, 미국 방산업체들은 연간 2,000억 달러 이상의 유럽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미국 방산업체들의 전체 해외 매출을 능가하는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와 방산업계의 밀접한 관계를 고려할 때, 이런 경제적 이익이 5% 요구의 배경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헤그세스 자신도 국방장관 지명 전 방산업계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NATO의 실존적 위기

5% 논쟁은 NATO 내부의 깊은 균열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예산 문제가 아니라 동맹의 정체성과 미래에 관한 근본적인 갈등이다.

동맹의 균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동서 균열이다. 러시아를 직접 위협으로 느끼는 동유럽 국가들과 상대적으로 안전한 서유럽 국가들 사이의 위협 인식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폴란드 외교관은 "파리나 마드리드에서는 러시아가 멀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바르샤바에서는 매일 아침 러시아의 위협과 함께 일어난다"고 말했다. 반면 스페인 외교관은 "우리의 주요 안보 위협은 불법 이민과 테러리즘이지, 러시아 탱크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남북 균열도 심각하다. 재정 여력이 있는 북유럽 국가들과 재정 위기를 겪은 남유럽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5% 논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부유한 북유럽 국가들에게 GDP의 5%는 부담스럽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국가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이탈리아의 한 경제학자는 "우리가 GDP의 5%를 국방비에 쓴다면, 청년 실업률이 40%를 넘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안보에 도움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대서양 균열이다.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근본적 이해관계 차이가 5% 논쟁을 통해 표면화됐다. 미국은 NATO를 자국의 글로벌 전략을 수행하는 도구로 보는 반면, 유럽은 NATO를 집단 안보의 틀로 본다. 이 시각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신뢰의 위기

더 심각한 것은 동맹 내 신뢰의 위기다. 한 NATO 외교관은 익명을 전제로 "우리가 5%를 쓴다고 해서 미국이 정말 우리를 지킬까?"라고 반문했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 NATO 조약 5조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돈을 더 낸다고 해서 그의 태도가 바뀔까?"
이런 불신은 유럽 전역에 퍼져 있다. 독일의 한 안보 전문가는 "미국은 우리에게 5%를 요구하면서도 우크라이나 회의는 건너뛰었다. 이것이 진정한 동맹의 모습인가?"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의 전략 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은 유럽의 안보를 거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동맹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대로 미국 측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미 국방부의 한 관리는 "유럽은 70년 동안 미국의 보호 아래 번영을 누렸다. 이제 자기 방위도 제대로 못하면서 왜 우리가 계속 지켜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미국 관리는 "유럽은 복지에는 돈을 펑펑 쓰면서 안보에는 인색하다. 이런 무임승차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상호 불신은 동맹의 근간을 흔든다. NATO의 힘은 군사력뿐만 아니라 회원국 간의 신뢰에서 나온다. 그런데 지금 그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대안적 안보 체제의 모색

이런 상황에서 일부 유럽 국가들은 대안적 안보 체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오래전부터 '유럽 방위군' 창설을 주장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유럽은 자체 방위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워싱턴의 결정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도 조심스럽게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독일 국방장관은 "유럽 방위 협력 강화가 필요하다"며 "이는 NATO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결국 NATO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자체적인 방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는 북유럽 방위협력(NORDEFCO)을 통해 공동 훈련, 장비 공동 구매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발트 3국도 별도의 방위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은 미국과의 양자 관계 강화로 활로를 찾고 있다. AUKUS 참여, 인도-태평양 전략 공조 등을 통해 미국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이는 NATO의 집단 방위보다 양자 동맹을 우선시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장기적 함의: 세계 질서의 재편

5% 논쟁이 가져올 장기적 영향은 NATO를 넘어 전체 세계 질서에 미칠 것이다.

다극 체제로의 전환 가속화

미국이 유럽 방위에서 손을 떼면, 세계는 더욱 빠르게 다극 체제로 전환될 것이다. 유럽은 독자적인 안보 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감소로 이어진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런 변화를 환영할 것이다. 미국의 동맹 체제가 약화되면, 그들의 영향력 확대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관영 매체들은 5% 논쟁을 "서방 동맹의 균열"로 보도하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러시아도 "NATO의 내부 모순이 드러났다"며 고소해하고 있다. 이들에게 NATO의 약화는 자신들의 전략적 기회다.

중견국들의 딜레마

한국, 일본, 호주 같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도 5% 논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유럽에도 GDP의 5%를 요구한다면, 아시아 동맹국들에게도 같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우리도 조만간 같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GDP의 1%인 일본 방위비를 5%로 늘리는  것은 헌법 개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한국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현재 GDP의 2.8% 수준인 한국 국방비를 5%로 늘리려면 연간 50조 원 이상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전체 교육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병역 의무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군사 기술의 급속한 발전

아이러니하게도 5% 논쟁은 군사 기술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각국이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한의 방위력을 확보하려 하면서, 효율적인 무기 체계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무인 무기, AI 기반 방어 시스템, 사이버전 능력 등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기술에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전쟁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값비싼 전통적 무기 체계 대신 스마트한 기술 중심의 방위 체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유럽의 한 방위 전문가는 "5% 압박이 오히려 유럽 방위 산업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산 무기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 기술 개발에 나서게 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론: 숫자 너머의 진실

트럼프의 5% 요구가 던진 파장은 단순한 예산 논쟁을 넘어선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의 근간이었던 대서양 동맹의 미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첫째, 이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헤그세스의 말은 미국 외교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제공해온 '무료 안보'의 시대가 끝났다. 이제 각국은 자신의 안보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둘째, NATO의 본질이 변하고 있다. 가치와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 방위 동맹에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거래 관계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깃발이 아니라 더 많은 전투 부대가 필요하다"는 헤그세스의 말은 NATO를 순수한 군사 동맹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이는 NATO가 추구해온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같은 가치의 후퇴를 의미한다.
셋째, 유럽은 실존적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며 기존 안보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지만 독립적인 길을 갈 것인가. 스페인의 명확한 거부는 저항의 시작일 뿐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신중한 계산, 영국의 모호한 줄타기는 모두 이 딜레마의 다른 표현이다. 각국은 자국의 역사적 경험, 지정학적 위치, 경제적 여건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넷째, 이는 새로운 지정학적 현실의 도래를 알린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의 부담을 줄이려 한다. 우크라이나 회의를 건너뛴 것은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전략적 우선순위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동이다. 유럽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거의 합의에 도달했다"는 헤그세스의 주장은 희망적 사고에 가깝다. 현실은 NATO가 창설 이래 가장 심각한 내부 균열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70년 대서양 동맹의 미래를 가를 분수령이다.
이 논쟁의 결말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2025년 6월 5일 브뤼셀에서 시작된 이 논쟁은 단순한 예산 협상이 아니라, 21세기 세계 질서의 향방을 결정할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유럽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세계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의 끝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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