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 학계는 영어 위주로, 특히 미국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현실에 있다. 나 역시도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학문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나는 한국어나 일본어, 스페인어로 생산된 글을 보는 시간보다 영어로 생산된 글을 훨씬 더 많이 보고 있으며, 강의할 때도 영어로 된 교과서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은 IR 학계의 영어 중심 현실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상황이 지식 생산과 전파에 있어 언어가 갖는 중요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리고 이것이 IR 학문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영어로 된 자료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놓치고 있는 다양한 관점과 지식은 없는지 자문하게 된다.
이 문제는 IR 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학문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분야도 정치학/경제학/사회학 등 분야마저 가리지 않는다. 많은 경우는 영어의 지배가 학문의 세계화와 지식 교류 증진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오히려 그 부분에서 많은 모순과 딜레마가 노출되었고, 이미 양적지표건, 사례분석이건 많이 드러나 있는 문제이다.
최근 Review of International Studies에 게재된 Ersel Aydinli와 Julie Aydinli의 논문 "Exposing linguistic imperialism: Why global IR has to be multilingual"은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IR 분야에서 영어의 지배적 위치가 학문의 진정한 세계화를 저해하는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39개 비영어권 국가의 135개 IR 학술지를 분석하여, 영어로 출판되는 학술지가 더 높은 순위를 받는 경향이 있으며, 영어 논문이 비영어 논문보다 더 많이 인용된다는 점을 밝혔다.
특히 이 연구는 비영어권 학자들도 대부분 영어 문헌을 인용하고 영미권 이론을 사용하지만, 연구 주제는 주로 비영어권 국가/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는 IR 학계에서 '종속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비영어권 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역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영미권의 개념과 이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언어적 일방주의'가 지식 생산의 종속성과 획일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IR 학문의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서는 다언어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학회, 학자들, 학술지 등 여러 주체들의 구체적인 노력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 논문은 발표 직후부터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Amitav Acharya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 논문이 기존 연구의 공헌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Acharya에 따르면, IR 분야에서 영어의 지배가 Global IR의 장애물이라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그는 자신과 Barry Buzan, Peter Vale, Navnita Behera 등의 연구를 언급하며, 특히 글로벌 남반구 학자들이 이 문제에 주목해 왔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Acharya는 영어 외에도 IR 개념의 어원에 있어 그리스-라틴어의 언어적 헤게모니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IR이 서구에 의해 매개된 그리스-로마의 아이디어와 관행에서 파생되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Acharya는 이 새로운 논문이 체계적인 조사와 사례 분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연구라고 평가하면서도, 기존의 Global IR과 포스트콜로니얼 IR 연구들이 영어의 지배적 역할을 '간과하거나 무반성적으로 수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거나 잘못된 평가라고 비판한다.
기본적으로 IR 분야에서 영어의 지배적 위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적 헤게모니가 지식 생산과 학문의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Aydinli와 Aydinli의 연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만 이들의 주장이 Acharya가 지적한 것처럼 기존 연구의 공헌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러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나는 영어의 역할에 대해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영어가 학술장의 공용어로서 유용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 세계의 학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지식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학문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비영어권에서 도출되는 학술적 논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단순히 다양성을 위한 다양성이 아니라, 학문의 풍부성과 깊이를 위해 필수적이다. 비영어권 학자들의 독특한 관점,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통찰, 그리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개념화한 이론들은 IR 분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영어의 실용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언어로 이루어지는 학술 활동에 대한 인정과 관심을 높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번역의 질을 높이고, 비영어권 학술지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며, 다국어 학술 활동을 장려하는 등의 구체적인 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Aydinli와 Aydinli가 주장하는 다언어주의의 필요성과 Acharya가 강조하는 기존 연구의 가치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IR 학계가 이러한 균형을 찾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IR'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여기는 것과 달리 IR 분야에서 영어 지배의 문제는 이보다 복잡한 양상을 가진다. 사실 이 문제의 핵심은 '권력자원'의 게임이다. 이 지점에서는 Acharya의 관점을 지지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이는 각기 언어권과 지역이라는 행위자들간의 일종의 교환과 협상의 문제로 나타난다.
IR 분야에서 언어의 문제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효율성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지식 생산의 방식, 이론의 발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학문의 다양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기존 연구의 공헌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통찰을 더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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