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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단상

마리로랑생 전시를 다녀와서

by Hwajun Lee 2026. 5. 3.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 한참을 떠올려야 했다. 그곳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고, 르누아르가 있고, 세잔이 있다. 익숙한 이름들 사이에서, 처음 보는 화가의 그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리 로랑생. 회색과 분홍, 그리고 옅은 파랑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화면은 주변의 인상주의자들과도 입체파의 거장들과도 다른 자기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예쁜" 그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예쁘다'는 인상이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의 화면 속 여인들은 어딘가로 시선을 비껴나간 채, 보는 사람과 직접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인상이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전시장에서 그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보면서, 처음 마주쳤을 때의 인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로랑생의 화면에는 거의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세계는 여인들과 동물들, 그리고 그들을 감싸는 부드러운 색조로 이루어져 있다. 입체파의 시기에 그녀는 입체파의 격렬한 분절을 거부하고 자기 식의 부드러움으로 형식을 풀어냈다. 그것은 회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단호한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녀의 화면에 거친 세계의 갈등이나 사회적 무게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시를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할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평생 마주해야 했던 문제는 어쩌면 거시적 갈등 이전에,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무게가 먼저였을 것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출신, 남성 중심의 파리 화단에서 자기 자리를 만드는 일, 아폴리네르와의 관계와 결별, 그리고 결혼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적국의 국적을 떠안게 된 처지 — 이런 것들은 큰 역사가 신문 헤드라인에 적히는 방식과는 다른 결로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든다. 그녀의 분홍과 회색은 그 무게를 외면한 색이 아니라, 그 무게를 안에서 견디며 통과한 색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인상이 더 분명해진 것은 그녀의 망명 시기를 다룬 부분에 이르러서였다. 그녀는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 남편 때문에 프랑스에서 떠나야 했고, 스페인을 거쳐 뒤셀도르프로 옮겨다녔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녀의 망명지들이 결국 모두 '유럽'이라는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가능한 장소들이었다는 점이다. 언어와 국경은 다르지만 살롱 문화와 미술 시장, 지인들의 연결망이 느슨하게 이어져 있는 공간. 그녀의 화면이 어디에 있어도 비슷한 음색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유럽적 네트워크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지지대로 깔려 있었다는 사실이 있을 것이다. 망명은 분명 단절이었지만, 완전한 단절은 아니었다. 그녀가 그릴 수 있었던 세계는 그 느슨한 연결망이 허락한 세계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파리지앵이라는 정체성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유럽 어디에서 살아도 그녀의 그림은 어딘가 파리를 향해 있었다. 1921년 이혼 후 파리로 돌아왔을 때, 그것은 단순한 귀국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 사건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회색과 분홍의 화면, 살롱 안에서 비스듬히 시선을 비끼는 여인들, 시 한 줄처럼 가벼운 윤곽선 — 이 모든 요소는 결국 어떤 특정한 도시의 공기에서만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녀의 그림이 사적이고 폐쇄적으로 보일 때조차, 그 폐쇄성은 한 도시의 특정한 공간 — 살롱과 응접실, 보헤미안적 모임의 안쪽 — 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파리지앵이라는 정체성이 없었다면, 그녀의 그림은 다른 어떤 색으로도 그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분명해진 것은, 로랑생이 아니면 그릴 수 없었던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같은 시기 파리에는 피카소가 있었고 브라크가 있었으며, 그들은 형식의 해체와 재조립이라는 거대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로랑생은 좁지만 자기만의 영역을 지켰다. 그러나 좁다는 것은 빈약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녀의 화면 안에서 분홍빛 회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그것 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정조의 매개였다. 망명과 귀환을 통과해 온 한 파리지앵 여성이, 자기가 살아낸 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그릴 수 있는 색으로 그린 것이다.


좋은 그림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그 그림이 어떤 삶의 결을 통과해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가만히 더듬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세계관에 내가 모두 동의하는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녀가 그 자리에서 그렇게 그렸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화면으로 남았다는 사실 — 그것은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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