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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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쓰면서 생긴 에피소드에 대한 소회

필자가 쓴 글 중에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선택된 기억과 피해자의식: 양국의 기념관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이 있다. 이 논문을 쓰면서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었다. 학위논문을 쓰고 육군사관학교에 복무하면서 연구를 멈추지 말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연구였다. 휴가를 내서 독립기념관도 가고, 이전에 가보기도 했고 모아 놓은 우슈칸과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자료를 모아서 쓴 논문이었다. 일단 글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퍼블리시를 하기 위해 학회지를 여기 저기 알아보게 되었다. 문제는 필자의 전공과 관련된 학회지에서 석사학위(박사과정 없이)만으로는 낼 자격이 있는 학회지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학회들이 학회지에 게재하는 조건으로 비용 지불을 요구하였다. 금전에 있어서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데 돈을 내는 것이 ..

일상단상 2016.02.01

베낀거면 걸리지 맙시다.

아이팟을 셔플로 듣다가 한 곡이 내 귀에 탁 거슬렸다.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초까지만 들어보면 된다. 2005년 이후로 연고대를 다녔거나 정기전을 가본 사람이라면 나랑 똑같은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작 난 연고대를 다녔다고 하기에는 조큼은 복잡 미묘하지만 ㅋ. 이 응원곡의 원곡은 다음이다. 천공의 성 라퓨타 삽입곡. 君をのせて 이 노래가 리메이크 곡인데 이 정도의 유사성이 확 드러나니 원곡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들었다. 편곡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서두로 시작했다는 것은 원곡에도 이런 비슷한 전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영석이 작곡한 7년간의 사랑이다. 최근에는 슈주의 규현이 리메이크한 적이 있다. 다만 원곡에서는 유사한 전개는 들리지만 문제를 느낄 만큼의..

음악 이야기 2016.01.15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4- 조약/지속성/배상액/시기의 아쉬움/당사자의 문제 그리고 역사문제의 정치의 어려움

1. 이 합의의 당사자들은 누구도 조약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법학을 하시는 분들이 모두 조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단지 조약적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외교적 협상/협의/교섭의 결과를 조약이라 하지 않는다. 본래 조약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외교부 사이트에 가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조약”이라 함은 “단일의 문서 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관련 문서에 구현되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또한 그 특정의 명칭에 관계없이, 서면 형식으로 국가간에 체결되며, 또한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를 말합니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조 참조) 그러나, 상기 정의는 편의상 국가간의 조약만을 대상으로 규율하고 있는 비엔나협약상의 정의입니다. 동 정의가 국가와 국제기구 또는 국제기..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3- 한국은 왜 이런 합의를 해줘야 했는가?

조금 방향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THAAD 관련 논문을 쓰면서 THAAD 도입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한반도 THAAD 배치의 타당성에 대해 분석해봤다. 그러나 한 상황에 대해서는 타당성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주한미군이 THAAD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많은 부분 한미동맹의 확장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에 대한 안보 이익의 반대 대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자율성이 된다. 이러한 동맹 구도는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미일동맹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동북아에 깔아둔 동맹의 차륜구조는 냉전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동북아의 국제정치구조의 기본적인 구조가 된다. 즉 한국이나 일본이나 국가자율성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걸려 있게 되고 이는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2- '최종적'과 '불가역적'의 배경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역사문제 중 하나의 이슈이다. 그러나 이 이슈가 다른 이슈들과 동질성이 큰지, 혹은 특별한 경우인지에 대해 묻는다면 이질성이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정신대 문제에서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말로 촉발된 위안부 문제는 다른 과거사 문제와는 심각히 다른 성격 하나를 가진다.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와는 달리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이고 이러한 비인륜적인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에 애당초 포함되지 않았던 문제였다. 또한 이는 단순히 한국만이 피해자가 있는 국가가 아니었고, 태평양전쟁기의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에 피해자가 있는 글로벌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가 호명된 이상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1- 화해/반성/합의의 선택

이 물음은 사실 양국관계의 역사문제에서 중요한 지점이 무엇인가를 되짚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다. 역사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종결되어야 하는가? 화해(reconciliation)인가 아니라면 반성(contrition)인가, 그렇지 않다면 합의(consent)되어야 하는가? 엄밀히 말해 한국인의 다수는 일본의 ‘반성’을 바래왔다. 이는 사과(apology)와는 다른 개념으로 상대국의 전적인 사과와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반성은 수많은 국가관계에서의 역사문제에서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 독일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곤 하는데, 독일의 사례 역시 전적인 사과+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으로 지속된 사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례이며 독일-폴란드/독일-프랑스/..

결빙, 제한된 합의, 그리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한일외교장관회담 합의문에 대해

다음은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전문. 1. 일본측 표명사항 일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예전에도 우리에게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한 무언가

책은 한번만 딱 보고 덮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 이유 없이도, 혹은 읽어야겠다고 느끼면 언제든 다시 봐야 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다시 보는 책이 딱 두 권 있다. 한 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고 한 권은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이다. 두 권 모두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며, 현실 정치와 이상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 지, 당위 추구와 고전적인 분석으로 이뤄진 책이다. 두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는가와 같은 한탄이 아닌 realpolitik를 어떻게 분석적 영역으로 설명하고 구현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다. 두 권 모두 시간을 앞서간 최고의 고전들이지만, 이 책만으로 realpolitik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무리이다. 나는 현실적으로는 ..

베네딕트 앤더슨 부고에 부치며.

학부 시절에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을 단 한 권 꼽으라면 Imagined Communities였다. 이 책은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공고하게 해줬던 책이고, 내가 생각하던 많은 모순들을 왜 발생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정면으로 맞닥트리게 해준 책이었다. 결국 난 이 책 덕분에 현재의 연구주제들을 가지게 되었고, 여전히 이 책에 대해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국가와 민족을 통시적, 공간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로 간주하고 있을지도 모르며 국가가 국가 내부에서 하나의 주관적인 내러티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특히 국가가 부여한 의무를 이행하면서 오면서 같은 전공안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이 책의 소중함을 다시 깨..

일상단상 2015.12.14

'왜' 분노해야 하는가를 묻기 전에 해야 할 일.

많은 이들이 분노하지 않음에 규탄부터 안타까움까지 교차하는 반응을 보여왔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난 시점이 언제부터인가를 생각해보면 꽤 오래된 것 같다. 한 10년 정도? 그들은 분노하지 않는지, 사회에 비판의식을 가지지 않음에 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한심해 보였을 수도, 그들이 거저먹으려고 하는 것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수 없다는 코멘트 이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진지하게 느끼는 것이 있다. 그들은 ‘왜’ 저항하지 않는 지를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왜 저항하지 ‘않는 지’에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그들과 자신을 다른 인격체로 간주하고 다른 인격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일상단상 201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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