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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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 138

다섯번째 편지

어느새 문제가 복잡해진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느낌이네. 이렇게 편지를 보내면서 우리의 문제도 많이 심화된 느낌이네. 어느새 서울이 비교우위로 내세우는 문화적 가치에 대하여 논하게 되다니,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만 여기서 그 세월은 흔히들 말하는 세월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논하는 언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느낌이 드네. 그냥 한가지 드는 생각이 있는 데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좀 당부하도록 하겠네. 우리의 일상이 이 논의를 함몰하지 않았으면 하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니 영향을 받지말라, 그것을 단절하라고는 얘기를 할 수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바이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논의라는 본질에 있음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상기하길 바라네. 물론 역으로 일상이 논의에 개..

네번째 편지

엘 포페에게 어느덧 가을이라니. 편지를 못쓰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음악도 많이 들었고 스포츠 경기도 보러 여기저기 다녔다네. 뭔가 다양한 삶을 즐기고 있는 듯 하네. 좀 다양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난 그냥 여기서 이렇게 편지나 쓰는 신세지. 편지가 늦어 많이 미안해서 이렇게 중언부언하는 거니 이해를 해주게. 한달동안이 편지를 달라는 자네의 재촉을 받으며 조금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네. 이번에는 수도권의 정치성에 대해 얘기해 보겠네. 서울과 수도권은 사실 어떤 특정한 정치적인 포지션을 한국 정치에서 취한 적은 크게 나타나질 않네. 물론 여기서 특정한이라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인’ 의미일세. 물론 이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변수이자 지금은 상수로서 작동하는 실체..

왜 '재생산'이 아니라 '증폭'인가?

개인적으로 난징대학살과 이를 비롯한 동북아의 과거사 문제에 있어 일본의 의도와 behavior를 말할 때 ‘망각의 증폭’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보통 정체성이나 인식, 관념적 측면에서 학계는 전반적으로 재생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생산은 이른바 최소한 일본의 의도와 behavior를 설명하는 데 있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생산은 기억의 정치의 형성에 있어 추모와 내러티브 채집 및 공식화, 그리고 재생산으로 이뤄지는 과정에 있어 대단히 매커니즘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순차적이며 선행관계가 명확한 관념이 바로 재생산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 있어서는 망각은 하나의 인위적 선택이며, 이러한 인위적 선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망각을 인위적으로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것은 재생산 중에서..

세번째 편지

먼저 애도를 표하네. 자네의 친우였던 영이 돌아가심에 대해서는 애도를 표하는 것이 맞다고 보네. 비록 자네와는 많은 다툼이 있어왔지만 자네는 영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해왔고, 영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 영의 존재는 결국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왔지. 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나치게 공리주의적이다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것이 어쨌든 사실인지는 잘 알았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었네. 어쨌든 영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깊게 표하는 바이네.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네. 지난 편지에서 서울의 확장과 서울 파시즘의 상관관계, 그 사이 관계에서 중요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사건으로 난 ‘민주화’를 들었네. ‘민주화’는 한국에서 서울 파시즘을 용인하게 한 중요한 개념이라 생각하네. 한국..

두번째 편지

엘포페에게 자네 집값도 떨어졌다는 뉴스는 나도 들었네. 참 안되었다고 말하고 싶네. 자네 스스로 각오한 일이라니 더 별말은 안하겠네. 뭐 자네 스스로도 체념하고 있다니 그럼 다행이라고 생각하겠네. 여전히 체념하지 못한 자도 많으니 말일세. 글쎄 앞으로 집이라는 재산 가치가 뛸지 안뛸지는 잘 모르는데, 그걸 떠나서 그냥 기본적으로 생각하기를 인구는 줄고 이미 핵가족화는 다 이뤄졌고, 아파트는 늘어나는데 집 값이 절대적,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방법은 인플레이션밖에 없지 않을까. 근데 그것을 재산이 늘어난다고 볼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오늘은 서울 파시즘의 기원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한국의 지금 형태의 도시화는 박정희 정권부터 본격화 되었네. 엄밀히 말하면 서울은 고도(古都)라네. 하지만..

첫번째 편지

엘포페에게 자네도 들었다시피 이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네. 간단히 풀릴 문제였다면 쉽게 쉽게 말했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집착’하는 일은 바로 일종의 파시즘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못할 그런 생각 아니던가. 그런 일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공감하게 끔 하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아네. 별 수 없는 일이지. 그러니 난 쉽지는 않지만 어떻게라도 설명해보려고 하네. 좀 더 풀어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내 설명의 목적은 결국 한 가지이지. ‘나에게 공감하게 한다.’ 그거면 되는 거네. 난 최근에 한국이라는 국가적인 공간안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정치 사회적 현상의 설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그리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어떤 특수한 정치 사회적 현상에 난 ‘서울 파시즘’..

난징대학살과 기억의 정치의 중일관계의 연관성-텀페이퍼 내부에서 인용-

냉전이 점점 와해되어가면서 일본의 다나카 정부는 중일관계 개선에 역점을 두었다. 1972년 중일 수교이후 중국정부는 기본적으로 일본과 우호적인 유지하려 하였다. 중일관계가 양 국의 지도부의 왕래로 개선되고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양 국은 서로의 접촉점이 증대되면서 점차 서로의 교류가 증대되었다. 이렇게 교류가 증대되면서 서로의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상호간의 교류도 증가하였다. 여기에서 서로의 기억의 정치가 충돌이 발생하였다. 과거사에 대한 서로의 해석과 인식이 달랐기 때문에 결국 서로의 기억의 교류는 불일치를 가져왔다. 교과서 문제와 망언의 문제가 본격화 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냉전 시기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충돌의 여지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일관계가 개선되면서 이런 문제는 양국관계에 있어 방해요소로 본격화..

동맹 추구의 당위성

현대 국제정치학, 그 중에서 안보 분야에서 동맹은 중요한 화두 중 하나이다. 동맹과 동맹에 의존한 안보가 의존한지에 관한 논쟁은 마키아밸리와 구이차르디니, 혹은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논쟁중 하나이며 과연 동맹의 효력, 즉 동맹 억지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의되는 바이다. 하지만 안보 동맹이라는 것은 결국 실존하는 개념이며, 안보 동맹의 억지력 역시 논란의 대상이고 여전히 그 개념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긴 하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한국과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북중동맹이 같은 층위는 아니지만 안보동맹으로서 실존한다. 여기에 한국으로 지역적 범위를 국한하고, 동아시아에서의 행위자들과의 관계로만 본다면 몇가지의 관계가 존재한다. 미국과는 한미군사협정을 통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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