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157 센카쿠열도와 쿠릴열도 분쟁 1. 센카쿠열도 문제 가. 개괄설명 1) 센카쿠열도라는 지역은 정확하게 동중국해의 남서부에 존재하는 섬들로서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루어져있다. 센카쿠열도라는 명칭은 일본어로서 중국식 명칭은 조어군도(釣魚群島)이다. 위치적으로는 오키나와 본도로부터 서쪽으로 410㎞, 이시가키지마(石垣島로 부터 북북서 방향으로 170㎞, 대만으로부터 170㎞, 중국 대륙으로부터 330㎞의 위치에 존재 2) 원래 섬 일대는 일본 사이타마 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매입하여,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한 상태 나. 센카쿠열도 분쟁의 경과 1) 일본정부는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 2016. 3. 16. 전통적이지 않은 안보 문제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간혹 이렇게 한국에서의 비전통안보에 관한 글을 쓰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안보'라는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전통적인 군사안보를 떠올린다. 안보라는 개념이 발전이 국가안보의 틀 위에서 발전한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국가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군사안보였기에 이러한 인식은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안보라는 개념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논쟁이 되었던 문제는 안보가 달성된 상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단순히 '정전 상태' 혹은 무력적인 분쟁이 없는 상태를 안보가 달성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안보 영역에서는 없었던 안보 문제들이 많이 대두하게 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안보와 구분되던 비전통안보라는 개념이 등장.. 2016. 3. 11.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4- 조약/지속성/배상액/시기의 아쉬움/당사자의 문제 그리고 역사문제의 정치의 어려움 1. 이 합의의 당사자들은 누구도 조약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법학을 하시는 분들이 모두 조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단지 조약적 성격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외교적 협상/협의/교섭의 결과를 조약이라 하지 않는다. 본래 조약이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외교부 사이트에 가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조약”이라 함은 “단일의 문서 또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관련 문서에 구현되고 있는가에 관계없이 또한 그 특정의 명칭에 관계없이, 서면 형식으로 국가간에 체결되며, 또한 국제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국제적 합의”를 말합니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조 참조) 그러나, 상기 정의는 편의상 국가간의 조약만을 대상으로 규율하고 있는 비엔나협약상의 정의입니다. 동 정의가 국가와 국제기구 또는 국제기.. 2016. 1. 8.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3- 한국은 왜 이런 합의를 해줘야 했는가? 조금 방향이 다른 이야기이지만, THAAD 관련 논문을 쓰면서 THAAD 도입에 대한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한반도 THAAD 배치의 타당성에 대해 분석해봤다. 그러나 한 상황에 대해서는 타당성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주한미군이 THAAD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많은 부분 한미동맹의 확장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맹에 대한 안보 이익의 반대 대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자율성이 된다. 이러한 동맹 구도는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미일동맹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 동북아에 깔아둔 동맹의 차륜구조는 냉전기에도 그리고 지금도 동북아의 국제정치구조의 기본적인 구조가 된다. 즉 한국이나 일본이나 국가자율성에는 어느 정도 제한이 걸려 있게 되고 이는 정책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2016. 1. 5.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2- '최종적'과 '불가역적'의 배경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역사문제 중 하나의 이슈이다. 그러나 이 이슈가 다른 이슈들과 동질성이 큰지, 혹은 특별한 경우인지에 대해 묻는다면 이질성이 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정신대 문제에서 위안부 문제가 등장한 것은 90년대 초였다. 김학순 할머니의 말로 촉발된 위안부 문제는 다른 과거사 문제와는 심각히 다른 성격 하나를 가진다.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와는 달리 이는 명백한 전쟁범죄이고 이러한 비인륜적인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에 애당초 포함되지 않았던 문제였다. 또한 이는 단순히 한국만이 피해자가 있는 국가가 아니었고, 태평양전쟁기의 일본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 지역의 대부분의 국가에 피해자가 있는 글로벌한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가 호명된 이상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 2016. 1. 3. <역사문제의 국제정치 4부작> -1- 화해/반성/합의의 선택 이 물음은 사실 양국관계의 역사문제에서 중요한 지점이 무엇인가를 되짚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다. 역사문제는 어떠한 방식으로 종결되어야 하는가? 화해(reconciliation)인가 아니라면 반성(contrition)인가, 그렇지 않다면 합의(consent)되어야 하는가? 엄밀히 말해 한국인의 다수는 일본의 ‘반성’을 바래왔다. 이는 사과(apology)와는 다른 개념으로 상대국의 전적인 사과와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반성은 수많은 국가관계에서의 역사문제에서 이뤄진 적이 거의 없다. 독일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곤 하는데, 독일의 사례 역시 전적인 사과+전적인 책임에 입각한 행동으로 지속된 사례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사례이며 독일-폴란드/독일-프랑스/.. 2015. 12. 31.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7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