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you have I been absent in the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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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의 로테이션-밤사와 토토가 사이에서

90년대 초반의 대중음악을 향유하던 사람들이 90년대 중반과 후반의 대중음악을 비판하던 가장 큰 문구는 음악성 없는 아이돌이 석권해버린 대중음악이란 비판이었다. 실제로 90년대 초중반과 후반의 한국의 대중음악은 확실히 다른 시절을 보여준다. 레게에서 레이브로 전이된 댄스음악은 댄스아이돌 그룹의 대거 등장으로 백댄서 출신의 멤버들이 점유하던 댄스음악은 크게 변화가 왔다. 더불어 일종의 구색맞추기였던 발라드 장르가 댄스 장르의 파이를 잠식하며 주류 장르가 되는 시대였다. 90년대 초반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언급했듯이 아이돌이 아티스트였던 시대거나 혹은 그렇게 보였던 시대였다. 신해철도 처음에는 아이돌이었고, 이승환도 분명 처음에는 아이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김성재나 이현도, 김건모나 신승훈도 크게 다르진 ..

음악 이야기 2015.01.03

전주 이야기 -4- 전주까지 오는 대중교통과 전주안에서의 대중교통

이번 이야기는 전주를 오는 사람들 중 자가용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해당하지 않는 내용이다. 전주까지 오는 결정을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전주를 대중교통으로 다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일단 전주는 다른 호남지역과 마찬가지로 고속버스교통이 철도교통보다 발달하였다. 배차간격만 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일단 전주는 서대전-익산-광주(송정)으로 이어지는 호남선이 아닌 서대전-전주-여수로 이어지는 전라선이다. 호남선의 대한 수요가 전라선보다 높으며 이러한 이유로 호남선보다도 KTX나 ITX의 배차 양이 적다. 게다가 전주와 여수순천 권역의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주말의 전라선의 표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전의 2주나 3주 전에 예매를 하지 않았다면 표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

전주 이야기 2014.11.15

전주 이야기 -3- 전주의 엔터테인먼트(의 결여)

먹을 것만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전주는 사실 본질적으로 지루한 도시다. 즉 어떤 활동을 함으로서 재미를 느끼는 도시가 애초에 아니다. 그래서 “전주에서 뭐를 해야 재밌어요?” 라고 묻는 질문이 본인에게는 가장 한숨을 쉬게 만드는 답이 된다. 사실 전주는 한옥마을 가서 체험하는 정도가 즐길만한 체험활동(?)이다. 하지만 이는 돈만 있다면 서울 북촌 한옥 게스트하우스에도 체험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실 한옥이라는 것, 냉정하게 말하면 겨울 외에는 그다지 별거 없다. 원래 전라북도의 제 1의 번화가는 전북대 앞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본래 년간 음주 소비량을 전국 5위권 안에 드는 지역이었고, 전라북도에서 유일하게 환락가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신시가지 개발 이후로 이러한 환락가의 패권은 신시가..

전주 이야기 2014.09.24

전주 이야기 -2- 전주에서 콩나물국밥 먹기

전주에 대해서 쓴다고 하면 음식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전주 사람 대부분에게 전주 음식의 대표를 뽑으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나올 음식으로 콩나물국밥을 꼽을 것이다. 왜 비빔밥이나 한정식이 아니라고 한다면, 한정식은 서민 음식이라기에는 가격이 비싸고, 비빔밥에 대해서는 후에 비빔밥에 대해 서술하면서 다시 논하기로 하겠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에 대한 설명은 프로농구단 전주 KCC의 감독인 허재가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안준호의 전주비빔밥 드립에 대응하여 “전주는 콩나물국밥이 더 맛있다"고 날린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물론 허재 감독이 술꾼이어서 해장국인 콩나물국밥을 더 선호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외지인이지만 전주에 상주하는 허재가 전주의 아이덴티티로서 제시한 것이 비빔밥이 아니라 콩나물국밥을 꺼내 들었다는 ..

전주 이야기 2014.07.16

전주 이야기 -1- 전주이야기를 시작하며 쓰는 글

전주라는 도시를 찾는 사람이 요즘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주를 본가로 두고 있는 동시에 전주에서 대부분의 유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전주를 찾거나 전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전주의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본인도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기에 놓치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집을 방문하고자 전주에 내려가는 사람으로서 전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주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여행하기에는 약간은 불편한 도시다. 지하철 같은 고정적인 대중교통은 없으며, 버스 시간도 일정하지만은 않고, 전주를 방문하기에 철도교통은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전주는 최근에 사람들이 자주 방문하는 도시가 되었고, 이는 전주가 가..

전주 이야기 2014.07.10

이번 학기의 반성

이번 학기를 돌이켜 보자면, 가장 부족했던 부분은 아무래도 동기도 의욕도 없는 피교육자에게 강의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는 고등교육기관에서는 피교육자가 어느 정도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했고 교육자는 이를 잘 끌고 오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번 학기를 거치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뻑뻑하게 되리라고는 생각 안했지만 이번 학기는 가르치는 의미에서 정말 빡빡했다. 의욕없는 피교육자를 어떻게 해야 끌고 갈 수 있는지는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조금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했던 업무 부담에서 가장 부담이 적었던 학기이기도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치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방법이..

일상단상 2014.07.01

이번에 쓴 한국과 일본의 선택된 기억과 피해자의식 : 양국의 기념관을 중심으로 - 요약문

한일 간의 양국관계에서 역사갈등은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이러한 역사갈등의 배경에는 기억의 정치가 존재하며, 기억의 정치에서는 양국의 기념관을 집단기억의 결과물인 동시에 기억을 주조함으로서 국가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이 왜 선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보다 필요하다. 한국의 기념관 중에서 독립기념관과 서대문 형무소 기념공원은 식민지기억을 다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기념관 중에서는 전쟁기억을 다루는 야스쿠니 신사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 있다. 독립기념관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독립의 기념을 위해 지어진 공간이지만 서대문 형무소 기념공원은 일제 강점기부터 60년대까지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실재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가..

친일파 = 군부독재라는 '신화'에 대한 짧은 반론

최근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이야기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발견했다. 사실 이전부터 존재했던 이야기지만 바로 한국의 군사권위주의정부와 친일파가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에 광복군은 한국의 주류 세력으로부터 완벽히 밀려났으며 친일파 세력이 한국의 근대사에서 권위주의 정부로 이어졌고,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어렵게 살 때, 친일파들은 한국사회의 주류로 득세하였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들이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러나 난 여기에서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다. 첫 번째 인물은 백범 김구의 둘째아들인 김신이었다. 현재 백범 김구기념관장이고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어르신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5.16 당시 쿠데타에 동조했으며, 그 이후에도 중화민국 대사와 장관,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

한국의 전쟁기념관을 영국의 제국전쟁박물관에 비춰보며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아쉬운 기념물은 전쟁기념관이다. 어릴 때부터 박물관을 즐겨 다니면서 한국의 박물관과 기념관에 대해서 여러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쟁기념관을 갈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언제나 느껴야 했다. 전쟁기념관에서 느끼는 곤혹스러움의 원인은 도대체 우리가 왜 그렇게 싸워야 했는가에 대해서 타자의 탐욕과 비도덕적 행위, 그리고 이념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진행되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고, 무엇을 지켰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결국 보이는 것은 우리의 상흔이다. 그러한 상흔의 기념이 복수심은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그러한 상흔을 입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부족해진다. 결국 우리..

'망각'과 '기념'에 대한 잡념.

잊혀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가? 아니 그렇진 않을 것이다. 나도 몇 가지를 기억의 저편에 두고 갔기에 앞으로 나갈 수 있던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망각은 후퇴나 퇴화가 아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선택되기 때문에 기념과 추모는 의미를 가진다. 즉 망각은 무조건적인 탈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거나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망각과 달리 잊혀진다는 것은 다른 의미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혹은 내 자신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욕망은 사실 개인이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망각은 권고될 수 없다. 그것을 권고하고 싶을지 몰라도 그것은 타자에 의해 강제되기에는 매우 뼈아픈 일이다. 집단기억을 연구하고 그것이 정치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수없이 던지는 사..

일상단상 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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