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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s/International Politics 46

안보위협이 상존하고 동맹이 없는 상태에서 핵개발을 하지 않거나 핵포기를 한 국가의 유형

안보적인 위협이 존재하고, 동맹이 없는 국가 중에서 핵을 최종적으로 개발하지 않는 국가들은 존재한다. 이를 핵개발의 여부, 핵포기의 여부로 분리하면 다음과 같이 분리할 수 있다. 첫째, 핵개발을 모색 단계에 그치거나 혹은 그 단계에 이르지도 못하고 비확산 국제레짐에 순응한 국가들이다. 둘째, 핵개발을 실제 시도하였고 상당 수준 이르렀지만, 결국은 이를 포기하고 비확산의 경로로 진입한 국가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실제의 핵무기를 포기한 국가들이 존재한다. 첫째에 해당하는 국가들은 타이완, 스웨덴과 같은 국가들이 있다. 타이완은 중국으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이 가해졌으나, 미국과의 동맹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미국의 국내정치 문제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렇기에 안보적인 위협이 여전히 상존했으나, 미국은 타이완관..

중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주한미군 도입시 방위분담금 증액의 가능성과 한국군의 직접 도입시 막대한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통한 경제적 손실도 예상된다. 결국 사드 배치의 문제를 단선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국가이익 차원에서 복합적이고 신중한 고려가 요구된다.”[1] 재작년 말-작년 초에 나온 사드 배치를 주제로 써서 모 저널에 실었던 논문의 초록이다. 그때도 이렇게 썼으나, 지금의 상황에 오고 나니 기분이 참 미묘하다. 이렇게 예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결과가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상황에 오니 참으로 난감하다, 중국은 왜 저리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해 넌덜머리를 내는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더라도, 다른 국가 특히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동맹국..

"핵강압"? is it real?

핵무기는 인류상 실전에서는 단 두 번 외에 의미 있게 사용된 적이 없다. Brodie의 말처럼, 그러나 핵무기가 등장한 이후로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1] 그러나 그것은 핵무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핵무기의 위력을 모두가 인식할 수 있었고 또한 핵무기가 세계를 말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을 처음으로 개발한 미국은 50년대 초반에 2차대전의 승전국이자 당대최고의 경제강국이자, 동시에 군사력으로도 핵을 유일하게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자국의 국력을 투사하여 이른바 패권국가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능력에 기반하여 미국은 한동안은 ‘강압’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2] 그러나, 소련의 핵개발과 이어진 스푸트니크 쇼크 등을 통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왜 다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인가?

이전에도 언급했던 등식이지만 위협을 T라 하고 안보를 S라할 때 T ≤ S일 때 안보는 달성되었다 할 수 있고. 안보는 자력방위와 동맹국의 안보 기여, 그리고 국제사회의 집단안보와 그 나머지의 잔차로 이뤄진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S = N + A + CS + α 어찌 되었건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은 심각하게 증진되었고 주변국이 느끼는 위협은 증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 안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전보다 안보의 수준을 증진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저 세 다항식의 세 항목을 기존보다 높이는 것이다. 한국이 고려해볼 수 있는 첫번째는 자력방위의 강화였다. 낮은 수준은 재래식 무기의 증진으로부터, 강한 수준은 자력 핵무장 및 핵잠수함 무장이었..

미국은 호전적인 대외정책 없이, 왜 북한붕괴론을 견지하는가? - 미중간의 북핵문제

최근 들어 왜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 붕괴를 목표로 하는, 혹은 그것을 전제로 하는 인식에서 파생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며,[1] 실제로 그렇게 보여진다.[2] 문제는 이것이 미국이 북한 문제를 인식함에 있어서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사실 북한붕괴론이 한창 맹위를 떨쳤던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을 비교하면 오히려 북한의 안정성은 지금이 더 단단해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미국은 북한붕괴를 계속 말하고 있을까? 아니 조금 더 진지하게 말하면,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기까지 하는가? 난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봐야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는 단순히 미국이 그런 인식을 정책결정과정에서 공유하는 집단사고의 문제로만 보기보다는 왜 미국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은 무엇인가?

북핵에 의해 골머리 썩는 여러 국가 행위자들은 그동안 어떻게 하면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과연 그러한 고민은 해결 가능한 것인가? 흔히들 말하는 북한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정말 있는 것인가? 조금 방향을 틀어보자.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해야 북한이 납득 가능한 제의와 협상의 장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왔다. 지금부터 이 글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일지를 한번 구상해보려고 한다. 즉 북한이 탄도미사일 무기체계를 구축함에 있어서 사용했던 역설계를 해보고, 이렇게 역설계된 상황이 과연 구현 가능한 상황인지를 생각해보자. 물론 이 글은 이런 식의 접근을 한번 시작해보자는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글이고, 보다 더 정밀한 분석 혹은 모델링은 ..

센카쿠열도와 쿠릴열도 분쟁

1. 센카쿠열도 문제 가. 개괄설명 1) 센카쿠열도라는 지역은 정확하게 동중국해의 남서부에 존재하는 섬들로서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루어져있다. 센카쿠열도라는 명칭은 일본어로서 중국식 명칭은 조어군도(釣魚群島)이다. 위치적으로는 오키나와 본도로부터 서쪽으로 410㎞, 이시가키지마(石垣島로 부터 북북서 방향으로 170㎞, 대만으로부터 170㎞, 중국 대륙으로부터 330㎞의 위치에 존재 2) 원래 섬 일대는 일본 사이타마 현에 사는 한 남성의 사유지였으나, 일본 정부가 권리자에게 20억 5천만엔을 주고 매입하여, 2012년 9월 11일부로 국유화한 상태 나. 센카쿠열도 분쟁의 경과 1) 일본정부는 1885년 오키나와에 살던 후쿠오카 현 출신 사업가 고가 다쓰시로(古賀辰四郞)가 발견한 뒤 일본 정부가 무..

전통적이지 않은 안보 문제들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간혹 이렇게 한국에서의 비전통안보에 관한 글을 쓰게 된다. 사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안보'라는 개념은 대부분의 경우 전통적인 군사안보를 떠올린다. 안보라는 개념이 발전이 국가안보의 틀 위에서 발전한 것도 사실이고, 이러한 국가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군사안보였기에 이러한 인식은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안보라는 개념이 본격화되면서부터 논쟁이 되었던 문제는 안보가 달성된 상태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단순히 '정전 상태' 혹은 무력적인 분쟁이 없는 상태를 안보가 달성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게다가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기존의 안보 영역에서는 없었던 안보 문제들이 많이 대두하게 되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안보와 구분되던 비전통안보라는 개념이 등장..

결빙, 제한된 합의, 그리고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한일외교장관회담 합의문에 대해

다음은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기자회견문 전문. 1. 일본측 표명사항 일한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협의해왔음. 그 결과에 기초하여 일본정부로서 이하를 표명함. 1)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2) 일본정부는 지금까지도 본 문제에 진지하게 임해 왔으며, 그러한 경험에 기초하여 이번에 일본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 분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조치를 강구함..

'아일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짧은 생각

아랍의 봄,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 그리고 IS의 등장 등으로 촉발된 시리아 난민 문제는 아일란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국가들의 정책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바뀌는 양상을 보여줬다. 내가 안타까운 것은 아일란의 죽음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 아니 아일란과 같은 소년들은 수없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이들이 수없이 핏값을 지불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일란의 죽음을 사진으로 목격하고 나서야 유럽이라는 태엽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물론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자각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자신의 심상을 움직이지 않는 이상 행동하지 않는다는 개체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여튼,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라는 생각도 든다. 보도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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